대한민국에서 이 협동조합이 그리는 마을이 가능할까요? 이틈에 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뒤 나는 이 이사장을 ‘모든 돈 안 되는 것들의 대표’라고 부르며 괴롭힙니다. 그의 몸에 사리 몇 개쯤은 만든 것 같은데, 아직 분이 다 풀리지 않았어요. 발목까지 내려앉은 그의 다크서클만 아니었다면 사리를 눈으로 확인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여간 그는 불과 넉 달 만에 난리 발광을 친 제 폐악 덕분에 온화한 부인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으니, 피해자만은 아닙니다.
1년 전 인터뷰 때 내가 꽂힌 건 사실 이 부분이었어요.
“마을이 느슨한 확대 가족이 돼야죠. 혼자 살기 힘들어진 노인이 친구들, 마을 젊은이들과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요양원은 마을 단위로 만들어야 합니다.”
곧 50대가 되는 1인1견 가구인 저는 마을이 절실했습니다. 만나려면 족히 1시간은 지하철을 타야 하고 그나마 약속 잡기도 힘든 친구들은 관계의 자양강장제일지언정 일상적 밥은 되기 힘들었어요. 급할 때 개를 맡기고, 코로나로 뻗었을 때 먹을 걸 나눠주는 이웃을 갖고 싶었어요. 혼자 사는 푸우는 만날 행복하다잖아요? 문만 열고 나가면 같이 놀 돼지 피글렛, 당나귀 이요르가 있으니까요. 아무도 푸우한테 바지를 안 입을 거면 살이라도 빼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느슨하고 촘촘한 연결망이 있다면, 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책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그랬어요.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자신을 지키려하니까요. 두려움의 원인을 타자에게 투사하거나 통제해 풀려 한다고. 지난 삶을 돌아보면, 저는 무서워서 생떼로 타인을 통제하려 드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늙어가는 저는 반드시 더 약해질 거예요.
이종수 이사장, 다시 말해 ‘모든 돈 안되는 것들의 대표’는 인터뷰에서 마을에 책방을 만들려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책방 알바할 게요!” 그때는 그 책방을 제가 만들어야 한다는 걸 몰랐어요. ‘책방에서 커피 마시고 책도 읽고, 오후엔 해변에서 수영도 해야지, 최저임금 받으면서.’ 이런 알량한 꿈을 꿨더랬습니다.
일 년 뒤 이 꿈 중에 실현된 건 커피밖에 없어요. 커피는 정신을 두드려 깨우려고 퍼마십니다. 넉 달 동안 책은커녕 뉴스도 못 봤습니다. 이제 제 롤모델이자 위인은 세상의 모든 자영업자입니다. 동네 슈퍼만 가도 경외심이 들어요. 대체 이 사장님은 이 수많은 결정을 어떻게 했을까? 자영업자야말로 회계, 인테리어, 마케팅, 영업을 모두 아우르는 이 시대의 종합 예술인이자 지식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