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연구위원의 남해 책방 도전기(feat.몽덕) 지난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활주로 이탈 사고로 인해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기원하며 올해 마지막 뉴스레터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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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 몽덕이와 희망제작소가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닌 원정기 <몽덕 희망 원정대>의 후속! 김소민 연구위원이 몽덕이와 함께 좌충우돌 책방 도전기를 이어갑니다.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시작,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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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원자, 70년 도장장인
안 망할지도 몰라, 남해 동네책방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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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이 중요해요.” 책방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조언입니다. 심란합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 콘셉이 없는 게 문제 아닌가요. 책방이 들어설 건물을 피해 다녔습니다.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동네 유일한 목욕탕 ‘약수탕’이었습니다. 그 뒤에 17년간 비어있다 2년간 빵집이었습니다.
지난 5월, 먼지와 곰팡이로 범벅인 동굴 같은 공간은 이도 저도 아니었어요. 한쪽 벽은 기괴한 돌들을 시멘트로 발라 쌓아놨습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그 돌에서 건강에 좋은 파장이 나온다는데 그 벽만 보면 저는 명이 줄 거 같았어요. 대문 앞엔 잡풀들이 자랐습니다. 얼마나 억센지 잘 뽑히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을 볼 때마다, 단전으로부터 깊은 울화가 올라옵니다. 어쩌란 말인가. 저는 제 집 인테리어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방바닥, 지붕 있고 물 나오면 되는 거 아니야? 책방지기 취향이 밴 아기자기한 동네책방들을 돌아볼수록 절망이 쌓입니다. 밤마다 반려견 몽덕이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우리 도망갈까?”
아직 도망가긴 이릅니다. 먼저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책방의 주인은 ‘삶전환연구소’입니다. 1편(링크)에 소개한 ‘인간AI’와 ‘모든 돈 안 되는 것들의 대표’(이종수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를 포함해 각지에 흩어진 마을공동체 활동가들과 연구자들 20명이 돈을 보태 생태와 지역공동체를 살리고 연대를 지향하는 삶을 목표로 만들었습니다. (‘24시간 노동의 세계로의 전환이겠지’라며 저는 비아냥거리는데, 인간AI는 해독하지 못하는지 전혀 타격 없는 얼굴입니다. 제가 오타를 내거나 과세 품목과 비과세 품목을 헷갈리면 여지없이 지적합니다. ‘오류, 오류, 경보, 경보’)
책방은 끝나지 않을 조별 과제 같습니다. 가장 괴로운 건 ‘왜 내가 짐을 져?’란 마음이고 가장 미운 건 곁의 조원이죠. 옛 목욕탕의 폐허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자면, ‘인간AI’를 분해하고, ‘모든 돈 안 되는 것들의 대표’의 귀청을 뜯어내고 싶어집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니까요. 책방 개업일이 미뤄질수록 제 무능의 증거 같아 자기혐오가 자랐습니다. 그 혐오는 너무 뜨거워 가지고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타인에게 던집니다. 도망가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은 ‘인간AI’와 ‘모든 돈 안 되는 것들의 대표’를 남해 바다에 던지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들을 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해하기 전에 누군가 먼저 ‘인간AI’를 분해할 거 같고, ‘모든 돈 안 되는 것들의 대표’는 윤석열 정권 들어 사회적 기업 예산이 대폭 준 바람에 이미 걱정이 땅 꺼집니다. 제가 먼저 바다로 뛰어들 거 같은 날, 남해읍에서 귀인이 등장했습니다. 검지 크기의 작은 망치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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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읍에 위치한 도장가게 '미광사'의 서용길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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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 한 구석, 흰색 간판에 붉은 도장이 그려져 있었어요. ‘미광사’, 아름다운 빛의 도장 가게입니다. 7평 남짓한 가게 한쪽엔 동네 할머니들 세 명이 쪼르륵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손님은 아닌 거 같아요. 딱히 대화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한쪽 벽엔 경구를 새긴 서각 작품들이 빼곡합니다.
그중 하나는 단박에 눈에 띕니다. 산스크리트어를 한 땀 한 땀 새긴 신묘장고대다라니 범어문이에요. “저거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한쪽 구석엔 두루마리들이 수북합니다. 서예 작품들이죠. 그의 이름은 서용길(83), 아름다운 빛의 가게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는 저의 귀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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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용길 씨가 작은 쇠망치를 들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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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은 쇠망치와 조각칼을 보여줬어요. 70년 동안 써온 것입니다. 8살 때 6.25가 터져 경남 하동에서 남해로 내려왔습니다. 그해 칠월칠석 남동생이 태어났어요.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남해 조선소에서 나무를 다루던 아버지가 산재를 당해 누웠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손재주가 있었던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으로 가 도장을 배웠습니다. “밥 주고 신발도 줬어. 명절 땐 용돈도 좀 받았어. (작은 쇠망치를 보여주며) 실수하면 이걸로 머리를 콩콩 맞았는데 나는 별로 혼나진 않았어.” 16살에 부산에서 ‘문화당’이란 첫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때 마음은 말로 다 못하지. 엄청나게 기뻤지.”
그가 2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교통사고를 당해 팔까지 부러진 그는 남해로 돌아와 26살에 결혼했습니다. 평생교육원에서 서각과 서예를 배웠어요. 서용길 씨가 돌돌 말아둔 한지를 폅니다. 10미터는 족히 될 거 같습니다. 검지 손톱보다 작은 크기 한자가 빼곡합니다. 불상 뱃속에 집어넣을 금강경 필사 ‘불복장’이라고 합니다. 한 획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해요. 할머니 세 명은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고 용길 씨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전엔 잘됐는데, 이제 가게를 접어야 하나 싶어.” 젊은 시절 그는 4분이면 도장 하나를 팠답니다. 수많은 도장을 파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하나 딱 만들고 나면 쾌감이 있지. 얼마나 좋아. 마음에 안 들게 나올 때도 있지. 그게 사람인데 어쩔 거야.” “다른 일 해보고 싶으신 적 없었어요?” “한 번도 없는데.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는데. 도장 팔 때는 아무런 생각이 안 나거든. 걱정도 다 사라져.”
자기 자신마저도 먼 배경처럼 아스라이 사라져버리는 순간, 그런 몰입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은 말갛습니다. 요즘에 손으로 판 도장이 필요할까요? 그 몰입 속에서 태어난 한 글자, 한 글자는 존재의 다른 효용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아름답죠. 노안 탓에 그는 이제 도장 하나 파는 데 10분은 걸립니다. 사람 가운데 일을 한다는 뜻으로 호가 인중(人中)인 그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단골 할머니 세 명밖에 가게에 오지 않아도 ‘미광사’ 문을 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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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래마을책방'을 새긴다는 것
그가 만든 도장이 은모래마을책방의 로고가 됐습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이 머무는 곳, 제 고통이 피어오르던 곳엔 그의 서각이 걸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줄곧 저는 억울하고, 분한데 또 인정은 받고 싶고, 그런 시골에서 무슨 책방이 되겠냐는 사람들한테 보란 듯 증명하고 싶고, 그런데 엉망진창이 될 것만 같아 제가 싫어지고, 제가 싫으니 네가 밉고...결국 나, 나, 나, 나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고, 어떤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마음 때문에 짐을 쌌다 풀었다 했습니다.
노을이 질 즈음, 은모래해변 콩게들은 모래로 그림을 그립니다. 콩게들이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모래를 열심히 씹어 뱉은 흔적들은 무늬를 만듭니다. 하트, 폭죽, 웃는 얼굴... 곧 파도에 씻겨가겠지만 비스듬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 무늬들을 당신이 본다면, 아마도 ‘아, 아름답다’ 할 것입니다. 콩게들의 그림을 본 날, 저는 일단 하루 더 앞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부디, 아무 생각 없이.
글·사진: 김소민 은모래마을책방지기·희망제작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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