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크리스마스 아침 7시, 문주원(36)이 준비운동을 합니다. 한쪽 다리를 쭉 뻗고 쪼그려 앉습니다. ‘아이고, 으윽’ 빵집 언니 콩풀(60), 농사짓는 필주(30)와 그의 친구들까지 앓는 소리를 내며 따라 합니다. 이 ‘화잇팅’(화-eating) 모임은 한두 달에 한 번 만나 경남 남해를 둘러 난 ‘바래길’을 함께 걷고 많이 먹습니다. 겨울바람에 짧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주원이 바다를 끼고 산길을 오릅니다.
저벅저벅. 두 발로 굳건히 땅을 디디고 선 이 사람의 허벅지 근육은 경이롭습니다. 남해에 건축사사무소를 낸 최초의 여성이자 최연소 건축사입니다. ‘건축사사무소 산토건축’ 대표인 주원은 최근 대학원 논문과 에세이를 합쳐 책 ‘평화롭고 치열하게’(산토기록 펴냄, 2025)를 냈습니다. 글을 쓰고, 독서모임을 하고, 청년센터에서 강의하고, 달리고, 수영해요. 놀랐습니다. 이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근육이죠. 제 몸무게의 거의 절반이 근육이에요. 저는 생계형 영혼이에요.”
저벅저벅.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주원은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로 왔습니다. 반지하. “파브르 곤충기였어요. 꼽등이, 돈벌레… 누군가 문을 딸깍딸깍 열려고 해서 한숨도 못 자기도 했어요.” 고시원. “갇힌 기분.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4평 원룸. 100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쓸 수 없었습니다. 부모에겐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답니다. “우울했어요. 영어 성적도 좋고 대학도 우등으로 졸업했는데,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건설사에 지원했는데 여자는 거의 안 뽑더라고요.” 주원은 한강 다리를 달렸습니다. 검은 물이 출렁였습니다.
2012년 한 사람이 주원의 삶에 들어왔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요. 이 둘은 4평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룸메이트”가 됐습니다. 친구가 월세를 보탰습니다.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잠든 친구의 발을 보면 주원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엉망진창이죠. 짐을 머리에 이고 살았어요.” 이 친구와 주원은 이후 13년을 함께 삽니다. 둘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지만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같이 안 살면 서로 손해가 막심하니까 사이가 좋아야만 했죠. 핵심은 상호존중이에요. 부부는 성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거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잖아요. 제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랑은 살기 싫었어요.”
8평, 1.5룸. 재개발 예정지. 집이 두 배 커지고 숨통이 틔었습니다. 보증금 400만원에 월세 25만원, 서울에서 이런 집을 구한 건 행운이었어요. 주원은 5명 이하 작은 설계사무소에 입사했습니다. 월급 150만원 중 90만원을 저축했답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습니다. 페미니즘 책들을 읽었는데 모두 자기 이야기였습니다. “결혼하면 사랑으로 시작해서 우정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우정으로 시작하면 안 되는 걸까? 비혼이 제1의 선택지가 될 수 있구나.” 주원에겐 이미 그런 우정이 있었습니다.
준신축 8평. 투룸. 동네가 밀리고 아파트가 섰습니다. 사람이 빠진 공간은 벌레들이 차지했습니다. 주원과 룸메이트를 내몬 건 바퀴벌레였습니다. 준공 5년 미만에 시시티브이(CCTV), 엘리베이터, 현관 비밀번호가 있는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부러울 게 없더라고요.” 주원은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인테리어 시공회사에서 현장을 익혔습니다. 건물을 둘러싼 환경을 공부하고 싶어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했고요. 그는 유럽 여행에서 사온 덴마크 작가의 그릇에 시리얼을 붓던 어느 날 아침을 기억합니다. 저벅저벅 어깨 겯고 걸어온 두 여자는 취향에 맞는 그릇을 사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삶을 성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