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손님 없는 책방에서 으슬으슬 떨고 있다 보면, 가을은 언제 오냐고 누군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던, 길었던 지난 여름이 가물가물합니다. 온몸이 땀에 절어 제 냄새에 재 코가 마비될 거 같은 날들이 진짜 있었던 건지 싶습니다.
지난해 7월 공기는 불길한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어요. 개업식도 하기 전인데 울고 난 눈두덩처럼 책들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 둬도 원래 목욕탕 건물이었던 책방은 물기를 옴팡지게 물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종이가 늙어가듯 주름졌어요.
그리고 곰팡이가 피어올랐습니다. 책방의 겨드랑이, 등판, 손톱 같은 책과 책장 사이에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책을 모조리 꺼내고 곰팡이를 닦아냈습니다. 하수구는 삼킨 물을 다시 토했습니다. 책방엔 하수구 냄새가 뱄어요. 물기에 책방 앞 잡초들은 거침없이 자랐습니다. 이 웬수같은 책들. 책의 물성이라면 지긋지긋했습니다. 모든 무게가 있는 것들이 저주 같았어요. 제 피부에선 땀인지 눈물인지 짠맛이 났습니다. 그땐 그렇게 비가 내렸던 거 같아요.
모순인 감정이 반대 방향으로 세차게 잡아당깁니다. 기대고 싶은데, 간섭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면을 흰색으로 칠하고 있을 때였어요. 혼자라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밉니다. ‘추상화를 그린다고 생각하자. 무제 478번.’ 동고동락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빵집의 동글동글하고 작은 여자, 밥때마다 저를 먹이는 여자가 도와주러 와 묻습니다. “왜 흰색으로 칠해? 물결 무늬 유리 넣기로 한 거 아니었어?” 글쎄, 왜 흰색으로 칠하고 있을까? 확신이 없습니다. 돈이 없다, 사람이 없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해명’을 합니다.
“매대는 왜 여기 있어?” 글쎄, 왜 거기 있을까? 또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다 설움이 몰려옵니다. 이게 제가 제게 덫을 놓는 방식입니다. 상대에게 제 문제들, 제가 잘 못하는 것들을 주절이 늘어놓습니다. 오랜 세월 썼던 애정을 구하는 수법이죠. 상대를 조언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습니다. 상대가 이런저런 해결책을 내놓으면 이런 마음이 올라옵니다. 간섭하지 마! 내가 바보야? 그 사람이 선을 넘지 않을까 불안해집니다.
어디쯤에 경계를 그어야 할지 헷갈립니다. 어쩌라는 걸까? 언제까지 이런 방식의 쳇바퀴를 돌 건가? 그날 하루 종일 빵집에서 노동하느라 스스로 반죽이 돼 가고 있는 작고 동그란 여자에게 난데없이 울컥했습니다. “지금 지적이 아니라 지지가 필요해요.” 흰색 페인트가 뚝뚝 떨어지는 붓을 든 저는 결국 관계를 파탄 내버린 게 아닐지 두려워집니다. 밀가루로 희끗희끗해진 앞치마를 두른 여자의 어깨와 눈썹이 둥근 포물선을 그립니다. “자기 정말 이제까지 열심히 했어.”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