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연구위원의 남해 책방 도전기(feat.몽덕) 누렁이 몽덕이와 희망제작소가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닌 원정기 <몽덕 희망 원정대>의 후속! 김소민 연구위원이 몽덕이와 함께 좌충우돌 책방 도전기를 이어갑니다.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시작,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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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타오르는 불꽃,,, 내가 사라지는 순간들
안 망할지도 몰라, 남해 동네책방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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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숲은 소리를 품었습니다. 취취, 뾰로르, 딱딱딱... 거의 평생 수도권에 산 제겐 잘 들리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아침 6시 금산, 남해탐조클럽 ‘명상’과 함께 쌀쌀한 청색 공기 속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숨죽인 19명이 낙엽 밟는 소리가 자박자박 흩어졌습니다.
“여기 쇠딱따구리, 직바구리가 있네요.” 김경원 박사(남도자연생태연구소 소장)가 고개를 들고 멈춰 섭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가는 현을 긋는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갑니다. 같은 새라도 시시각각 소리의 리듬과 멜로디가 변합니다. 곧게 솟은 소나무 아래 전나무, 참나무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 아래 관목들이 자랍니다.
“지금부터 겨울까지 떠돌이 박새가 떼를 지어 와요. 동물의 움직임은 나무가 결정하고, 나무의 움직임은 동물이 결정해요.”
줄기가 매끈한 나무엔 벌레가 들기 어렵고 그런 나무엔 새들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울퉁불퉁해지는데 새들이 줄기를 통통통 두드려 그 안에 벌레를 잡아줍니다. 손바닥 절반보다 작은 올리브색 상모솔새는 솔에 붙은 작은 진드기를 먹는답니다. 들꿩나무 입은 보들보들하고 폭신해요. 들꿩이 좋아하는 열매가 맺힙니다. 끼륵끼륵, 짹짹... “어치네요. 어치는 고양이나, 다른 새 소리를 흉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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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는 내가 처음 만나는 새”
저는 핸드폰에 새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나무, 새, 숲, 이런 커다란 보통 명사로 이루어진 제 세계는 얼마나 뭉툭한가요. 오십이 되도록 이토록 흐릿하게, 어렴풋이 세상을 감각해 왔다는 생각에 조급해집니다. 안 외워집니다.
“이름 하나하나 외우려고 하지 마세요. 새 소리가 작고 짧아 저걸 어떻게 듣지 싶겠지만 한번 들리기 시작하면 정말 잘 들려요. 새를 통해서 숲과 교감하는 거예요. 이 숲에서 내가 보는 이 새는 이 숲에서 지금 내가 처음 보는 새예요. 자기가 본만큼, 들은 만큼만 들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봤다고 착각하게 돼요.”
찌쯔찌리릭 박새, 취이취이 동박새, 티유티유 어치.... 나뭇잎 사이로 스민 햇살이 축복처럼 머리 위로 내렸습니다. 숲은 더 시끌벅적해졌어요.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소나무 가지를 두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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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남해 갯벌을 따라 걸었습니다. 주둥이가 당근처럼 길고 주황색인 검은머리물떼새들을 기다립니다. 이 새는 밀물에 굴이 입을 열면 벌어진 틈으로 재빨리 주둥이를 밀어 넣어 굴을 먹어치웁니다. 꼬리 끝이 까맣고 고양이 소리를 내는 괭이갈매기들이 도톰하게 솟은 모래 둔덕에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있습니다.
“경관 전체를 보세요. 뻘이 있어야 먹거리가 많죠. 물이 들어올 때 쉴 곳이 있어야 해요. 경관이 변하는 건 새에게 큰 일이에요. 새를 만나는 순간의 모든 감각을 열어보세요. 바닷물이 들어올 때 어떤 느낌인가요? 그게 새를 만나는 거예요.”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 가마우지, 중대백로... 남해 강진만입현매립지엔 월동하러 온 오리들이 유영합니다. 흰뺌검둥오리, 알락오리, 발구지, 쇠오리....
“모든 장소는 유일무이하며 다른 어디에서도 되풀이되지 않는다. 놓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55년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2020년 75살로 숨진 배리 로페즈는 알래스카 선주민들에게서 배운 것을 유작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에 썼습니다. 알래스카 유픽족은 집합명사로 물으면 답하지 않았답니다. 곰이 아니라 어떤 한 명의 곰이 어떤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했는지만 말했습니다. 선주민들은 경험을 곧바로 언어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건 속에 다만 자신을 던져 놓고 관찰했습니다.
로페즈가 곰을 만난 순간을 ‘곰과의 조우’로 요약할 때 “그들은 공기 중에서 냄새의 흔적을 찾거나 새의 울음 혹은 스치듯 부딪는 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이면서 사실상 곰과 조우한 순간을 시간의 앞뒤로 연장해 갔다. 나에게 곰은 명사, 즉 문장의 주어이고, 그들에게 곰은 동사 즉 ‘곰이 하는 것’이라는 동명사였다.”라고 썼습니다.
수없는 순간들, 수없는 방식으로 신은 현현했습니다. 모든 감각을 열고 관찰할 뿐 요약, 규정을 유보할 것, 로페즈가 자아의 감옥을 넘어 자연과 교감하고, 깊은 충만감에 이른 방법입니다. “(장소와 나) 서로가 (서로에게) ‘알려지는’ 이런 교감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현대인이 고독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 연결감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라고 로페즈는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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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사람마저 몇 분만에 카테고리에 나눠 집어넣는 저는 이 헐떡거림, 마른 넝쿨 같은 정처 없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지난 달 12일 정월대보름, 어스름이 내려앉은 남해 상주면 주차장에 1층 높이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며칠 전부터 상주면청년연합회에서 쌓아놓은 대나무 더미 위로 불꽃이 어둠을 잡아챘습니다. 달집태우기였어요. 동네 사람들 머리카락은 사정없이 바람에 흐트러졌고 볼은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검은 산 위에 검은 구름이 흘렀습니다. 대나무를 삼킨 불꽃은 맹렬하게 분노하고, 간절하게 몸부림쳤습니다. 삶에 대한 갈망 같기도, 파괴의 열망 같기도 한 처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불꽃의 기도를 따라 검은 산, 검은 구름 사이로 창백한 달이 천천히 떠올랐습니다. 달, 산, 하늘, 불이 서로 할퀴고 보듬는 풍경에는 혼을 부르는 신성함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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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둥......상주풍물패가 꽹과리, 북, 장구를 쳤습니다. 강강술래가 시작됐어요. 저는 제 옆에 누군지 모를 여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동네사람들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원을 돌았습니다. 풍물패들이 노래합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대형은 달팽이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자들이 나온다.” 여자들이 원 안으로 들어가 춤을 췄습니다. “남자들이 나온다.” 남자들이 원 안으로 들어가 춤을 췄습니다.
앞집 빵집 여자 콩풀, 빵집 일을 도와주는 은하, 책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재홍이, 그림을 잘 그리는 세영이, 아직 코딱지를 먹을 수 있는 재하,,.. 풍물패가 둘이 짝을 지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발치기, 발치기, 발치기” 저는 동그란 여자 콩풀과 짝을 지어 그의 발과 제 발을 부닥쳤습니다. “손치기, 손치기, 손치기” “엉덩이 치기, 엉덩이 치기, 엉덩이 치기.” 웃고 있는 콩풀을 보며 웃는 저는 제가 지워지는 걸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하늘로 이어지는 수직선, 체온으로 이어지는 수평선, 그 십자에 흡수되는 거 같았습니다. 그런 흡수에는 천진한 활기와 순전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대나무들은 재가 됐고, 보름달은 떠올랐습니다.
PS: 몽덕대장도 탐조견으로 참여했답니다. 그런데 탐조는 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쓰레기들에 관심이 더 많더군요.
글/사진 :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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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을 돌보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자리에 시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 진행합니다. (참가비 : 일반 시민 30,000원 | 후원회원 10,000원 * 해당 참가비로 모든 강연 수강 가능)
✔️ 3/13(목) 19시 / 민주주의를 치유하자 - 김찬호 교수(완료)
✔️ 3/19(수) 19시 / 21세기 생존주의와 생태민주주의 - 김홍중 교수
✔️ 3/20(목) 19시 / 요즘 우리가 괴로운 철학적 이유 - 박구용 교수
✔️ 3/27(목) 19시 / 도시의 마음 - 김승수 전 전주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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