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미래’에 산다 떵떵거릴테다

안 망할지도 몰라, 남해 동네책방⑪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다’ 북토크

지난 6월, 그나마 남아있던 정신마저 들락날락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쓴 와타나베 이루타, 와타나베 마리코 부부 북토크 때문입니다. 이들은 17년간 일본 시골에서 ‘이상한 빵집’을 했어요. 고택에서 채취한 천연 누룩균과 농약을 쓰지 않은 농산물로 빵을 만들고 숙련공의 노동을 존중하는 가격을 붙여 팔았습니다. 사람을 포함해 모든 걸 상품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이윤을 쌓아가는 자본주의를 넘어, 균처럼 순환하는 경제, 이윤은 남기지 않고 사람은 남기는 실험을 벌였습니다. 이들의 ‘시골 빵집 게릴라전’을 담은 책은 대박이 났어요. 북토크 신청자가 몰려 장소를 책방에서 상주면 종합복지센터로 옮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종합복지센터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주민자치센터로 장소 공지를 했단 말인가요. 이 오류를 북토크 열리기 2시간 전에 알았습니다. 책방엔 프린터기가 없어 옆집에 가 바뀐 주소를 크게 적은 포스터를 프린트합니다. 차를 몰고 주민자치센터로 갑니다. 달랑 한 장 뽑아왔습니다. 부족할 거 같습니다. 다시 차를 몰고 책방 옆집으로 가 프린트를 더 합니다. 그 전에 포스터 만들며 제가 한 삽질까지 설명하다가는 제 목을 조르고 싶어질 거 같아 생략합니다. 이날 북토크에 부산, 통영, 하동, 산청, 곡성 등지에서 64명이 왔습니다.

와타나베 부부는 충격 뉴스를 전했습니다. 지난해 빵집을 접었다고 했어요. 책이 대박 나고 손님이 몰렸습니다. 빵을 더 만들어야 하니 고용을 늘리고 이들 월급을 줘야 하니 마케팅을 벌여야 하고 다시 빵을 더 만들어야 했습니다. 코로나 때는 전국에 택배 발송했어요. “누가 만드는지도, 누가 먹는지도 모르는, 이런 관계를 계속해 가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마리코) 이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누룩균은 조금이라도 오염된 환경에선 죽어버립니다. 부부는 누룩균을 찾아 세 번 이사한 끝에 돗토리현 깊은 산속 지즈초에 자리 잡았습니다. 건물을 네 개 사서 지난해 ‘다루마리 연구소’를 열었습니다. 엄청난 부자 같지요? 그런데 한 채 값이 500만 원이랍니다. 각 건물에 맥주, 빵 공방을 만들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누룩이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미지로 분산-순환형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이루타는 “너무 귀중해서 팔고 싶지 않은 걸” 만들 계획입니다. 빵과 맥주를 함께 만들며 식재료가 순환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리려 합니다.

오만 삽질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지만, 신체성과 수행이란 두 낱말이 마음에 박혔습니다. 인간으로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을 움직여 체득하는 신체성과 지성은 따로가 아니에요. 이 둘을 오고 가야 인간으로서 행복해지는 힘을 쌓을 수 있어요.”(마리코)  

책이 대박 난 뒤 가방끈 긴 도시 청년들이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빵집에 왔는데, 몸 쓰는 일에 미숙했답니다. 마리코는 경쟁의 반대는 수행이라고 했습니다. 이루타의 “도저히 팔 수 없이 귀여운 빵”들은 그 수행의 증거입니다. 왜 시골마을일까요? “어떻게 하면 경쟁 체제에 올라타지 않고 수행으로 살 수 있을까? 시골에서 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마리코) 수도권에 평생 살다 남해 상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된 저는 ‘대안의 가능성’으로 지역이란 그의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체감한 것들이 있었죠.

“6억이야!” 수도권에 사는 친구가 전세값 이야기를 하는데, 현타가 왔습니다. 제가 얼마 전 이사온 남해 집은 방 세칸짜리인데 매매가가 7천만원입니다. 해가 잘 드는 이 집에서 저는 결핍은커녕 부유하다 느꼈는데 이 통화를 하면서 갑자기 가난해진 거 같았습니다. 

수도권에서 삶은 모눈종이 같아요. 동네에 따라, 같은 동네라도 아파트 이름에 따라, 같은 아파트라도 동수나 층수에 따라 계급이 나노 수준으로 갈라졌습니다. 직업, 학력까지 넣으면 간단한 방정식의 답처럼 제 삶의 등수가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누굴 만나건 모눈종이 몇 번째 칸인지 맞대보는, 내 스스로 내 칸을 짚어보는 긴장이 있었습니다. 남해 상주면에선 그렇게 서로를 재기 힘들어요. 흰색 페인트를 바른 순둥이네 집이 붉은 벽돌로 쌓은 몽덕이네 집보다 비싼지 줄 세울 수 없습니니다.

“왜 그런 사람이 남해 살아?” 여기 사는 명문대 출신 박사 얘기(아마 연재를 계속 읽으신 분이라면 ‘얘기’가 아니라 ‘뒷담화’란 걸 눈치채셨겠지만)를 했더니 수도권에 사는 지인이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은 어디 살아야 하는데?’라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참았습니다. 악의 없다는 거 아니까요. 수도권과 지역 사이 줄 세우기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질문이 튀어나오게 할 정도로 강력합니다. 줄 세우기는 개별성의 숨통을 죄고, 개별성이 사라지면 통제하기 더 쉽죠.

오기가 생깁니다. 이 남쪽 끝 책방이 망하지 않고 버텼으면 좋겠습니다. 모눈종이 따위 이탈해도 잘 산다고, 여기는 ‘오래된 미래’라고 떵떵거리고 싶습니다. 북토크가 끝난 뒤 뒷풀이, 남해에서 돈가스 가게를 하는 일본인 료타가 기타를 잡았습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 밤, 일본어로, 한국어로, 제각각의 목소리로 ‘떼창’했습니다.(그런데 바로 오늘도 책방대표인 인간AI한테 그만 두겠다고 난리를 쳤지요.) 

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은모래마을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