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 1920년대 ‘대화장여관’이 세상을 바꾸는 ‘대화의 장’으로 레인메이커협동조합 이만수 대표@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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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대구의 구도심인 중구 향촌동, ‘대화장’의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1920년대 ‘대화장여관’을 레스토랑이자 카페,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대화장’은 공간 자체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입니다. ‘대화장’은 색깔이 다른 다섯 개의 공간으로 나뉩니다.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스미는 대화살롱은 유럽의 펍 같다면, 미드센추리풍 가구들을 들여놓은 ‘홈스윗홈’은 누군가의 거실을 닮았습니다. 셀프사진관, 예식장, 갤러리까지, 모든 공간에서 함께 즐기는 공연이나 파티, 대화가 이뤄지도록 꾸몄습니다. 이곳엔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렸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오해를 이해로, 편견을 발견으로 바꿔갑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될지 모릅니다. 드랙아티스트, 장애인, 트랜스젠더 등이 토크 콘서트를 벌입니다. 이들과의 대화는 유튜브 영상으로 이어지고요. 이곳에서 당신은 ‘낯익은 사람’의 낯선 면모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봄은 무엇인가요?” 대화장에는 같이 온 사람들끼리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버전의 대화카드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주제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누구든지 대화클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화장을 운영하는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의 이만수 대표(37)는 “좋아하는 걸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영상창업동아리로 만난 청년 5명이 2011년 만든 레인메이커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대구 창작자들의 판로를 마련하려고 10여 년 동안 ‘소셜마켓’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6일 대화장에서 이만수 대표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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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동아리서 만난 5인방, 대구 작가들 판로 개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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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고 당신을 잊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못 잊으면 불행해진다. 그런데 당신은 그 모든 순간을 지켜봐야 한다. 당신은 잊히길 바라나?” 이 카드로 한참 동료와 이야기했네요. 이런 대화카드는 어떻게 만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소설 같은 데서 영감을 받아요. 이 카드를 만들고 나서 우리끼리 많이 하던 얘기란 걸 알았어요. 저희는 진짜 쓸데없는 토론을 8시간씩 하거든요. 아, 우리는 레인메이커 멤버 5명이에요. 대학 영상 창업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이명박 정부 때라 청년 창업을 부추겼어요. 원스톱으로 주식회사 만드는 데 30초 걸리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레인메이커는 2011년에 주식회사로 시작해 2013년 협동조합, 2014년에 마을기업이 됐어요. 자유롭고 느슨한 연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취지였죠.
대구가 고향이시죠?
=네. 대구를 떠날 기회도 있었는데, ‘굳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지역을 떠나지 않았나, 서울에서 경쟁하는 게 두렵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런 질문이 싫어요. 무례해요. 저희는 서울 사람들만큼 실력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여기 살고 있으니까’라고 답하면 ‘대구를 엄청 사랑하시나봐요’ 그래요. 대구가 좋은 점도, 싫은 점도 있죠. 애증이 맞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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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어떤 일부터 벌이셨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한에 놓인 집단이 흙수저 청년과 예술가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거지이기 때문에 서로 돈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못사는 사람들끼리 재밌는 거 만들어서 돈 많은 사람들한테 팔자 그랬죠.(하하) 대구 김광석 길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핫하지만 당시엔 하루에 50명도 안 오는 데였어요. 작업실이 7평이 안 됐고 월세가 13만원이었어요. 구더기가 비오듯 떨어졌어요. 그 거리에서 주말에 사람들이 플리마켓을 하더라고요. 카메라 들고 나갔죠. 인터뷰도 하고요. 재밌었어요. 플리마켓 사람들이 정말 예쁘게 만드는데 주말만 파니까 돈이 안 돼 투잡을 뛰더라고요. 저희가 지역을 떠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잖아요. 그런데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우리 같은 청년들이 많아야 세상이 좀 바뀔 수 있겠다는 이상한 정의감에 불탔어요. 그래서 작가들 상품도 팔고 파티도 열고 공연도 하는 ‘소셜마켓’을 열었어요.
10년 동안 꾸준히 소셜마켓을 하신 거 보니 잘 됐나봐요?
=우리가 영상을 만들어 모은 돈 1억원 들이고 셀프인테리어 해서 교동에 플리마켓 메이커들의 물건을 위탁판매하는 자립예술공간 소셜마켓을 2013년 열었어요. 100여팀 작가들 물건을 매일 팔 수 있도록이요. 판매수익의 15%를 수수료로 받았어요. 그런데 부가세 생각을 못 했죠.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웠어요. 월세 200만원은 저희가 벌어서 냈죠. 2층엔 전시공간도 마련했어요. 힙합공연도 하고 송전탑 반대 투쟁하신 밀양 할머니들 전시도 하고요. 2년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샜어요. 집주인이랑 싸우다 쫓겨났어요. 그 뒤로 호기롭게 한 공간들 4개는 망했어요. 그중 교동 금은방 공간엔 제가 너무 몰두했어요. 100명이 와서 1명이 산다면 1만명이 오면 100개 살 거잖아요. 이런 스토어를 확장해가면 작가들 월급 정도는 받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거기서도 쫓겨났어요.
교보문고랑 손잡고 동성동점 핫트랙스에 소셜마켓을 열기도 했어요. 작가 120명 작품을 팔았는데 잘 파는 작가와 못 파는 작가 사이 갭이 너무 컸어요. 그때 핫트랙스가 30%, 저희가 15% 가져가는데 직원은 저희가 고용해야 했어요. 인건비가 15%보다 비쌌어요. 저희가 재무 다 보고 분실도 변상 다 하고요. 결국 월세랑 비슷하게 내는 꼴이었어요. 문제는 잘 파는 작가가 자기 가게를 시작하면서 저희한테는 물건을 잘 안 가져다 주는 거죠. 2년 정도 되니까 핫트랙스에서 그만하라고 했어요. 철수하고 그 다음날 가봤는데 핫트랙스 입구에 우리랑 같이 하던 작가 중 잘 팔리던 3명 작품을 따로 팔더라고요. 상처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코로나 전까지 소셜마켓을 쭉 이어갔어요.
적자는 어떻게 매웠어요?
=저희가 영상 일로 벌어서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었어요?
=다들 돈 버는 기계가 되는 게 싫었어요. 낭만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안 살고 싶었어요.
장애인, LGBTQ+와 HIV 감염인 등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영화 계통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퀴어나 장애에 대해서 관심 갖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공부할수록 예민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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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인한 '대화금지' 속 피어난 '찐'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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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장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2018년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이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18년 우수마을기업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어요. 상금이 5천 만원이었어요. 그 돈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주택도시기금 도시재생씨앗융자로 10억을 빌렸죠. 저희 협동조합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는 단계였는데 또 이런 모험을 하니 애들이 질색했어요.
석 달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여기가 마지막 본 데였어요. 문을 열었더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어요. 10~20년 동안 버려졌던 공간이라 고양이 사체들이 많았어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요. 중개해주신 분이 여기가 1920년대 대화장 여관이었다고 하는 거예요. 저희 멤버들이 그때 ‘대화의 장 하자’ 그랬어요. 이 건물의 아우라에 설득된 거죠. 2020년 코로나 때문에 ‘대화금지’ 현수막 아래서 오픈했어요.
왜 대화를 내 건 거예요?
=좀 현타가 왔었어요. 10년 동안 퀴어, 장애, 여성 이런 주제로 캠페인을 했는데 헤이터들이 많았어요. 세상이 하나도 안 바뀌고 있는 거 같았어요.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요. 대학 때부터 저는 편견이 적은 편이었던 거 같아요. 왜일까?. 영상 작업하다 사람들 많이 만났기 때문이더라고요. 휠체어 탄 친구랑 맥주 마시러 가면 화장실 갈 때마다 짜증 나거든요. 왜 이렇게 턱이 많은지. 그래서 ‘대화장’이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멀리 있는 소수자부터 시작해서 친한 친구까지, 여기서 오해가 이해가 되고 편견이 발견이 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여기서 무해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헤이터들은 제 존재에 너무 유해해요.
어떤 대화를 하시나요?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인디뮤지션, 드랙아티스트 등 초대하는 토크 콘서트에요. 50명 정원인데 항상 매진이에요. 드랙아티스트 나나영롱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 삶이 불확실해서 그런지 자기 확신, 자존감이 정말 멋있어요. ‘안녕, 낯선 사람’을 응축시켜서 유튜브 콘텐츠로도 만들었어요. 대화하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시각장애인 혜경님과 래퍼, 그래피티 아티스트, 딸을 둔 아버지 등이 만나 이야기하는 영상은 ‘만남의 광장’ 코너에 올렸는데 조횟수가 230만(숏폼) 가까이 나왔어요. 혜경님한테 래퍼가 자기 어떻게 생겼을 거 같냐고 했더니, 혜경님이 목소리를 듣고 ‘짱돌’ 닮았을 거 같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짱돌 닮은 거예요. 저희한테 재밌고 귀감이 됐던 얘기를 남한테 들려주고 싶어요. ‘널 고쳐보겠어’가 아니라, 듣고 나면 촉촉해지고 세상이 넓어지는 이야기요.
대화클럽이나 다른 프로그램들도 많더라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얘기할 때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저는 정말 귀여워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어요.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로 클럽을 만들고 싶다면 저희랑 같이 모집을 하죠. 이번 기수 클럽은 8개였어요. 원데이클럽처럼 하루 종일 공연, 발표, 토크를 벌이는 ‘대환장 페스티벌’도 해요. 4주년 때 주제는 ‘꿈의 대화’였고, 5주년 때는 ‘낭만의 대화여’였어요. 5주년 ‘대환장 파티’ 때 저는 AI클럽에 있었는데 낭만의 장면들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어요. 편지 클럽, 영화 <화양연화> 분석하는 클럽도 있었고요. 저희가 원하는 건, 이런 눈이 반짝이는 귀여운 사람들을 만나는 거예요.
대화장 안 다섯 공간 느낌이 다 달라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2층)은 예식장으로도 쓰신다면서요.
=지난해 한 남자분이 10년 사귄 동성 애인과 결혼식을 여기서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날만큼은 아무런 불협화음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요. 두 사람을 축복하는 친구 50여 명이 모여서 사랑에 대해 대화도 나누고, 정말 뿌듯했어요. 저희가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퀴어든 아니든, 이주민이든 아니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돈이 있든 없든 누구든 결혼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공장식으로 돌아가는 결혼식이 아니라, 하루 동안 의미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예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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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불 켜고 끄는 것같이 확확 바뀌진 않아요. 좋은 것은 안 좋은 걸 동반하고, 안 좋은 건 좋은 걸 동반하죠.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야죠. 우리가 서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잖아요. 미움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저는 너무 싫어요.
매출은 쭉쭉 올라가는 거 같던데요.
=2022년엔 8억, 지난해엔 10억이긴 했어요. 저희 협동조합은 공간기획, 굿즈 제작, 영상, 전시 등을 하는데 전체를 아우르는 건 콘텐츠라고 보시면 돼요. 매출이 올라도 남는 게 별로 없어요. 공간 유지비가 많이 들어요. 올해는 유난히 힘들어요. 저희는 주로 공익 단체나 사회적경제, 문화예술단체에게 수주를 받는데 이곳들 실정이 어렵잖아요.
앞으로 바라는 건?
=이 공간을 좀 안정적인 궤도에 올리고 싶어요. 이제까지 B2G(기업-공공)사업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권에 따라) 휘청거리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저희도 B2C(기업-소비자)로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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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및 정리/사진: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안영삼 팀장, 시민연결팀 김소민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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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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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중] 2025 소셜디자이너
로컬을 실험실 삼아,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답을 찾아온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희망제작소가 먹고 사는 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를 찾아요. |
[희망브리프] 소셜디자이너 리포트
희망제작소가 그간 만났던 소셜디자이너 32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살고, 일하고 연결하는 청년들의 지역살이,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살펴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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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소식 어땠나요?
1명의 후원이 변화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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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92 | 02-32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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