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죽음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 길 위에 납작하게 눌린 개구리, 똬리를 튼 채 말라버린 작은 뱀, 몸통은 사라지고 남은 매미의 날개, 자는 듯 드러누운 채 죽은 고양이...
가을이 끝내 오지 않을 거 같았던 9월 초, 카트에 쓰레기를 잔뜩 싣고 재활용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척추를 타고 땀이 흘렀어요. 중국집 뒤쪽 꺾어지는 골목에 하얀 털뭉치가 누워있었습니다. 그 곁에서 동네 누렁이가 냄새 맡습니다. 흰색에 갈색 반점이 박힌 개의 몸통은 가로로 늘어졌습니다. 네 다리는 앞으로 뻗었는데 한쪽 발은 살짝 구부렸습니다. 하얀 털 사이로 오후 햇살이 비껴갑니다. 빛바랜 연두색 목줄이 보입니다. "장군이?" 반응이 없습니다. 머리 쪽에 물컹한 덩이와 함께 선홍색 피가 흥건합니다. 똥꼬에서 검붉은 피가 한 가닥 흘러나왔습니다. 개를 보지 않고 앞으로 느리게 걸어갑니다. 장군이 엄마한테 알려야 할까? 장군이일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옆집 장군이는 아홉 살, 남자 성인 팔뚝만 한 바둑입니다. 용맹했습니다. 제 반려견 몽덕이가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짖으며 누가 이 동네의 터주대감인지 증명하곤 했습니다. 연두빛 목줄에 달린 방울을 울리며 온 동네롤 돌아다녔습니다. 차도 잘 피해 다녔어요. 이날은 장군이가 차를 피하지 못한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카트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장군이가 죽은 골목 쪽이 웅성웅성했습니다. 통곡 소리. 커트 머리를 동글동글하게 퍼머한 장군이 할머니가 웁니다. 빛바랜 분홍빛 블라우스 앞자락이 장군이 피로 물들었습니다. 브이넥 위로 주름진 목이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장군이를 안고 집으로 걸어갑니다. “어쩌냐, 어쩌냐”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그의 질문은 통곡 속에 짓물렀습니다. 장군이는 할머니 품에서 축 쳐졌습니다. 눈을 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장례 행렬처럼 장군이 할머니를 뒤따랐습니다.
석 달 전, 대선 날, 저는 외할머니를 잃었습니다. 빵집 언니 콩풀이 차로 공항까지 태워줬습니다. 40여 분 걸려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프더라고요. 공항에서 메밀국수를 사 먹었습니다. 장례식장은 한산했습니다. 자녀들도 이제 70대이니까요. 영정 사진 속 할머니는 옥색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회색빛 앞머리가 이마 위에서 곡선을 그렸습니다. 저는 그 단정한 이마 위쪽에 작은 혹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 감촉을 기억합니다. 어린 양가죽같던 할머니의 손등과 볼록 튀어나온 정맥을 만질 때 전해오던 온기를 기억합니다. 향년 98.
어린 시절 방학에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우무를 넣어 콩국수를 만들어줬습니다. 할머니에게서 뜨개질을 배웠습니다. 아이보리색 실로 목도리를 만들었는데 마무리는 하지 못해 한쪽 끝은 동그란 털실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었어요. 그 목도리를 두르고 회색빛 슬레이트 지붕들이 늘어선 장터를 뛰어다녔습니다. 싸라기 눈이 날렸고 목도리는 한 올씩 풀렸습니다. 아이보리색 실이 눈물처럼, 콧물처럼 축축한 겨울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여름밤, 제 머리에서 이를 잡던 할머니, 그의 무릎은 저를 구원했습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석 달 동안 콧줄로 영양분을 공급받았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울 자격이 없었습니다. 6년 전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몸의 반쪽 감각을 잃었습니다. 언어를 담당하는 쪽 뇌가 타격을 입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요양원에 가면 엄마는 말하는 대신 할머니가 좋아하는 ‘내게 강같은 평화’ 같은 찬송가나 ‘동백아가씨’ 노래를 틀었습니다. 그 요양원에서 할머니는 6년을 더 사셨습니다. 침묵 속에서, 가끔 터져 나오는 비명과 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