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도 없는데 남 시선 신경 쓰느라 반백 년 동안 배꼽티도 못 입어본 저는 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옷은 어떻게 입어?” 준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심드렁하게 답했습니다. “왜 못 입어? 그냥 입으면 되지.” “그런 옷 입을 때 브래지어는 어떻게 해?” “안 하는데.” “젖꼭지는 어떻게 해?” “함몰유두라서 괜찮아.”
이상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저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합니다.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걸 들키지 않으려 연기하거나 ‘저 이야기 뒤에 이런 말을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죠. 제게 중요한 건 상대가 아니라 상대에게 제가 어떻게 보일까입니다. 그러면 대화는 어느새 미묘한 평가의 무대가 됩니다. 긴장합니다. 어쩌면 제가 해왔던 건 대화가 아니라 지긋지긋한 독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준과는 뭔가 달랐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나’에게서 조금은 해방됩니다. 편안해요. 왜일까?
디자인을 전공하다 휴학한 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소개로 남해로 온 준은 이끼가 자라는 유리상자를 보물처럼 안고 저희 집에 처음 놀러 왔습니다. 유리상자 안에 이끼와 함께 흰색 점처럼 보이는 톡토기들이 살았습니다. “징그럽지 않아?” “귀여운데. 얘들이 있어야 이끼가 더 잘 자란대.”
그날 그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은 ‘궁금증 리스트’를 제게 보여줬습니다. “왜 세수하고 나면 얼굴이 맑아 보일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과연 그랬습니다. 그는 진지했어요. “각질이 물에 불어서?” 두 번째 궁금증은 꿀벌이었습니다. “벌은 왜 해변으로 날아갈까?” “나는 본 적이 없는데.” “해변에서 벌을 구해준 적이 있어. 바다 습기 때문에 날개가 젖어서 자꾸 아래로 처지더라고. 손에 담아서 숲으로 보내줬어. 여러 번 봤는데.” “바다엔 꽃도 없는데 왜 벌이 그리로 날아가? 죽으려고?” “그러니까.”
그 뒤로 저는 해변을 걸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욕망을 따라 망망대해를 향해 날아가다 날개가 처져버린 벌을 찾습니다.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세 번째 질문, 비가 오고 나서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봤거든. 죽어가는 지렁이한테 개미들이 달려들고 있었어. 이 지렁이를 살려줘야 할까? 그러면 인간이 개입하는 거잖아.” “그냥 둬야 할 거 같은데.” “그런데 애초에 아스팔트를 깐 건 인간이잖아. 지렁이가 그렇게 죽어가는 게 인간 때문이잖아. 그러면 그 책임도 져야 하지 않아?” 헷갈립니다. “그런 거 같은데. 그러면 그 개입 때문에 개미는 먹이를 잃잖아. 그것도 책임을 져야 하나?”
그날 밤, 우리는 해답을 찾진 못했는데 한참 그 문제에 골몰했습니다. 그날의 대화는 제게 목욕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발가벗고 온탕에 앉아 있는 것처럼 나른하고 상쾌했습니다. 해방의 느낌이었죠. 그 대화엔 판단도, 조언도, 목적도,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나’도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은 저를 가리키는 지표들, 출신학교, 직업, 소득, 나이 등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똑똑한지, 올바른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준을 읍까지 태워다주는 길에 엔진오일을 간 날, 자동차정비소 사무실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며 우리는 어쩌다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섹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낡은 매대엔 광고지가 꽂혔고 벽엔 오래된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준은 벌, 각질, 지렁이를 말하는 목소리 크기로 말합니다. “섹스, 섹스.” 저는 사장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소곤댔습니다. 중년 여자 사장은 컴퓨터만 쳐다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