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래도 이상해/ 왜 이럴까 생각해 멀리 떠나고 한동안 잊어도/ 소용은 없었고 더 외로워졌지”(‘술래잡기’)
남해 선구마을, 태풍이 불면 곧 무너질 거 같던 집에 그와 두 친구가 상주했습니다. “재밌고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보조금 사업으로 ‘무인도 영화제’를 열었습니다. 두 친구는 예술대학을 막 졸업했고 그는 그때까지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끈 적이 없었어요. “안 되겠구나. 이 친구들이랑은 지향이 달랐어요. 답답하고 화나고. 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기대했는데 잘 안 됐어요.”
서울로 올라가기 전 그는 마을 할머니를 찾아갔어요. 지원이 농사짓고 싶다고 하니 할머니가 70평 땅을 내줬었습니다. 돌이 유독 많았습니다. 감자, 고추, 깨, 고구마 여러 종류 심었지만 다 잘 자라지 못했어요. 그나마 건진 고구마를 할머니에게 드리려 했는데 할머니가 더 많은 고구마를 그의 품에 안겼다. 지원은 울었습니다. “서러웠던 거 같아요. 또다시 내가 속할 곳을 찾아야 하나? 어디서?”
2019년 말 서울로 돌아온 그는 환경단체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가 닥쳤습니다. 회사 인원 감축으로 잘렸어요.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졌습니다. “10여 년 동안 제3섹터에서 기성세대가 뭘 일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번아웃과 자금조달에 시달리고 노답인 거예요. 믿고 쫓아갈 선배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
표류하는 와중에도 ‘집’ 찾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다. “정말 정말 노력했어요.” 각종 워크숍과 모임을 쫓아다녔습니다. “나랑 놀자.” “밥해줄게, 우리 집에 와.”
그가 떠난 사이 남해에 남은 ‘카카카’ 친구들은 출판, 디자인 등 여러 일을 벌였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어요. 친구들 28명에게 투자받아 건물을 사고 비건 카레집을 열었습니다. 그는 2022년 남해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았고요, 남해에서 저만의 가사를 더 잘 쓸 수 있을 듯했어요.” 이제 그는 집을 찾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