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주의 집 안엔 ‘자연농 실험실’ 텃밭이 있습니다. 방 세 개짜리 촌집에 창고와 텃밭이 딸렸는데 보증금 없이 월세가 10만원이랍니다. 여성농민회 언니들이 주선해 구한 이 집은 한 할머니가 홀로 살다 숨진 뒤 비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살림살이는 필주가 물려받았습니다. 싱크대에 놓인 유리컵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바보는 항상 즐거워.’ 필주는 그 문구가 귀여워 웃었습니다. ‘여기 살았던 할머니가 지켜주시지 않겠나.’
필주는 자기 오줌을 페트병에 담아 액비를 만들었어요. 공기를 차단하고 오줌을 2주 정도 발효하면 냄새는 사라지고 퇴비가 됩니다. “진짜 신기하지 않아요? 다 순환하잖아요. 오줌, 똥이 아까워져요.”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 서양화를 전공하고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필주가 남해 농부가 된 여정의 시작은 고등학생 때 발병한 건선이었습니다. 느닷없이 피부가 붉게 부풀어 올라 성을 냈습니다. 회식하거나 배달음식을 먹은 날은 더했어요. 스테로이드 약을 써가며 회사에 다녔습니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남해로 여행 왔다 친구를 사귀고 2022년 남해로 이주한 뒤에야 그는 “부산에 살 때 힘든 상태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 걸 하고 싶고 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아예 엄두를 못 냈거든요.”
필주는 자기 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찰음식부터 배웠어요. “내가 먹는 게 나를 만드는 거니까 귀하게 여기게 되더라고요. 본연의 맛을 살린 식재료를 키우고 싶었고 자연농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충북 괴산 생태발효학교에 등록했습니다. 메주를 띄우고 짚을 꼬았습니다. 햇살을 듬뿍 받고 땀을 흘리자 건선은 퇴각했습니다. “농사해야겠다, 결론이 나더라고요.”
여성농민회 어벤저스와 시금치 130㎏을 모두 다듬은 날, 필주의 마음 한쪽은 조금 무너졌답니다. ‘전업농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하는 회의가 올라왔습니다. 6개월 동안 키운 시금치를 팔고 100만원을 벌었습니다. 단호박까지 합쳐도 농사로 올린 연소득은 200만원 정도였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며 월급 받던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자연농, 생태농으로는 전업이 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는 펜션과 지역 어린이 돌봄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합니다. 3년간 귀농청년 정부지원금을 바우처로 받지만 생활비로는 부족합니다. 3년 뒤엔?
지난해 가을, 필주는 농촌 워홀 우프(WWOOF) 프로그램을 통해 2주 동안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 캐롤의 농장에서 머물며 일했습니다. 선생님으로 일하다 전업농부가 된 30대 여성 캐롤은 호박, 파프리카, 가지 등 여러 작물을 키웠습니다. “충격받았어요. 마케팅도 안 해요. 로컬에서 다 해결된다는 거예요. 지역 학교나 센터에 당일 수확한 걸 바로 납품하더라고요. 같이 상추를 수확했는데 벌레들이 붙어 있었거든요. 그대로 납품한대요. 더 좋아한다더라고요. 지역 식당 두세 곳도 캐롤 채소를 받았어요. 더 싸고 보기 좋은 걸 선택할 수 있는데도요. 유기농으로 키우는 캐롤의 철학을 존중한 거죠.”
필주도 학교 납품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먹거리지원센터를 통해야 하는데 조건이 까다로웠습니다. “크고 깨끗하고 색깔이 좋아야 해요.” 땅은 그렇게 작물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작고 파이고 비틀리며 각자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둡니다.
안개 같은 회의를 뚫고 여지없이 봄이 왔습니다. 햇빛이 적당하고, 바람이 필주의 피부를 스칩니다. 필주는 온통 초록인 그의 밭, 그만의 밭에 있습니다. “이럴 땐 모든 게 아름다워 보여요. 업무 환경이 정말 좋은 거예요. 밭은 제 작품 같아요. 제가 뭘 넣고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니까. 알면 알수록 농사와 연결된 게 정말 많아요. 할수록 자부심이 생겨요.”
농부 김필주는 시금치를 거둔 자리에 단호박을 심습니다. (필주의 농작물을 사려면 인스타그램 @pilju 또는 언니네텃밭 https://sistersgarden.org)
글: 김소민 전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