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소셜디자이너 | 백아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표 @경북 상주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
|
|
|
“청년 몇 명 남았어요?” 질문이 놓치는 것들
백아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표 @경북 상주 |
|
|
‘참깨크루’가 참깨를 심는 날,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에 위치한 ‘달두개학교’에서는 팀별 물 옮기기 게임, 수박씨 멀리뱉기 시합이 열립니다. 이것은 농사인가 소풍인가? 아무렴 어떤가요! 즐거우면 그만이지요. “참깨 농사철이라 정신이 없었어요. 근데 친구들도 보고 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일손 SOS 신호를 보내면서, ‘참깨크루’라는 이름을 붙여봤어요. 오는 사람도 농사가 즐거운 기억으로 남으면 좋고, 저도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구실이 되잖아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일꾼을 부르는 편이 빠릅니다. 하지만 백아름 대표에게 필요했던 ‘다시 만날 이유’였습니다. 상주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다시 연락할 수 있는 ‘반가운 핑계’인 셈이지요.
2017년, 부산에서 나고 자란 백아름 대표는 아무런 연고 없는 경북 상주시로 훌쩍 이주했습니다. 지금은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하 청그협)’을 이끌며 친환경 농사를 짓고 수확물과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며 도시와 연결 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폐교를 활용해 조성한 ‘달두개학교’도 운영합니다. 도시 청년들이 농촌의 일과 생활을 경험하고, 주민들은 동아리를 만들며 공간을 함께 채웁니다. 마을 소식을 전달 받던 농산물 구매자는 실제 방문자가 되고, 프로그램 참가자는 조합 동료나 동아리 운영자로 돌아옵니다.
달두개학교를 거친 모두가 지역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백 대표 역시, 한때 떠나려고 짐을 싸기도 했고, 동료와 친구들의 빈 자리를 보며 여러 번 마음을 추스르기도 했다는데요. 여러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내린 답은 “사람을 붙잡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다. 떠난 뒤에도 다시 찾아올 ‘이유’가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동을 관계의 끝이 아닌 다음 시작으로 바꾸어온 시간이 벌써 아홉 해. 상주 달두개학교에서 소셜디자이너 백아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표가 그동안 마주해온 질문을 함께 나눴습니다. |
|
|
▲ 경북 상주시 이안면에 위치한 폐교를 활용해 ‘달두개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백아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표 ⓒ희망제작소 |
|
|
- ‘참깨크루’부터 관계인구 프로그램 ‘달달일상’까지, 달두개학교에는 새로운 사람이 오가고 머무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작년에는 500명이나 다녀갔다고요.
= 사실 저 완전 내향형이거든요. 잘 모를 땐 시골 살면 사람 만날 일도 더 적겠지, 그럼 더 편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웬걸… 지금 사람을 안 만나는 날이 하루도 없어요! (하하) 도시는 현관문 닫고 들어가면 끝이잖아요. 그런데 시골에 있으면 손님들이 수시로 찾아오셔요. 폐교라 해도 학교는 개방적인 공간이고, 청년들이 있다니까 뭐하는지 궁금하신 가봐요. 처음에는 진짜 적응 안 됐어요.
저는 계속 여기 있으니까, 항상 누군갈 보내고 남는 입장이 되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얼마의 기간이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떠나는 건 늘 아쉬운 일이죠. 헛헛하고, 지치기도 하고요. 그런데 개인적 감정 보다 외부 시선이 더 힘들어요. “그래서 총 몇 명 남았어요?”, “몇 명 왔다 갔어요?”, “그정도 밖에 안 돼요?” 이런 식으로 얘기하실 때요. 아니, 나라에서도 못 하고 있는 지방소멸 해결을 왜 나에게 요구하지? 싶고. (하하) 무엇보다 저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을 충분히 해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해요. 왜 나는 안 봐주지? 여기 계속 남아있는 ‘나’는 안 보이는건가?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계속 쏟고, 프로그램도 늘 새롭게 기획해봐도 지역에 정착하게 만드는 건 늘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어느 순간 문득 “청년을 남긴다는 건 뭘까?” 싶었어요. 지역 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른데. 우리 마을은 정주 청년 규모 보다, 지역에서 중심 잡고 활동을 이끌 청년이 있냐 없냐가 더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이주 청년이 오가는 ‘플랫폼’이 되겠다고 생각어요. ‘플랫폼’은 정거장이니까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왔다가 언제든 가고, 또 올 수 있잖아요. 머무는 청년 수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해요. 시기나 조건에 따라, 많을 때도 있고 한창 없을 때도 있고. 인원이 많다고 늘 좋거나, 적다고 늘 나쁜 것도 아니고요.
- 상주로 이주한지 벌써 9년차네요. 어떻게 아무 연고 없는 상주에서 지역살이를 시작하게 됐나요?
= 부산이 고향이예요. 대학에서 푸드코디네이터를 전공했는데, 재밌긴했지만 업으로 삼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요. 서울로 상경해서 2년 정도 노량진 고시촌에 있었는데, 결국 잘 안 풀렸어요. 그렇게 다시 본가에 왔더니 자존감이 완전 바닥을 치더라고요. 저한테 서울은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곳이었어요. 공무원 시험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합격’이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까. 결과만 놓고 보면, 저는 실패한 사람이죠.
그렇게 그냥 취업해서 직장 생활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쯤 친구를 만났는데, 시골에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일을 조금씩 도와주다가 정신 차려 보니 한 발 걸치고 있었어요(하하). 그러다 친구 대신 예비사회적기업 설명회를 들으러가게 됐는데, 오가는 시간이 길다 보니 멘토님(당시 이안면 이장님)과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때 상주시에 대한 소개, 폐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죠.
구경할 겸 한 번 놀러가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상주에 왔는데 학교가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지금보다 훨씬 더 낡은 상태였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커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어요. 어차피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이참에 부모님을 떠나 완전히 독립해보자 싶어 상주로 이주를 결심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이죠? (하하) 그렇게 두 발을 완전히 다 걸치게 된 거예요.
- 처음 준비했던 예비사회적기업은 잘 되지 않았나봐요. 그 후에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만든건가요?
= 초기엔 일본 사례를 참고해서, 농촌 잡지를 발행하고 구독자에게 농산물을 보내주는 사업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잘 되진 않았어요. 중간에 엎어졌거든요. 농촌 경험도, 사업 경험도, 연고도 판로도, 뭐 하나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엄청 막막했어요. 그때 멘토님이 “시골에서 살려고 모인건데 도시 일을 그대로 가져와서 하기 보단, 시골에 필요하고 맞는 일을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각자 먹고 살 방법을 찾는 대신,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주 다음 해인 2018년에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만들었고요.
처음부터 폐교를 활용한 건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돈도 여력도 없었거든요. 조합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은 농산물 판매예요. 지역 내 여성농이나 친환경 농가의 좋은 작물을 판매로 연결하자는 취지였는데, 의도가 좋아도 판로가 없으니 막막했어요. 그러다 멘토님이 연결해주신 관계망을 통해 조금씩 판매가 늘기 시작했어요. 그때 매달 지역 소식과 조합 활동을 담은 소식지를 같이 보내드렸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 소식지를 보내드리는 분들은 1,400명 정도 되고요.
|
|
|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교육청에 장기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페교 활용 공간 ‘달두개학교’ 카페, 작은도서관, 공방, 공유부엌, 동아리, 생태텃밭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공간이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
|
|
▲‘달두개학교’에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운영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는 물론, 지금까지 청년, 주민, 조합원 등 다양한 주체와 함께해온 사업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전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희망제작소 |
|
|
- 이주 초창기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창업이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조합 활동의 기초가 된 셈이네요.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다 직접 농사까지 짓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 농산물 판매를 시작하긴 했는데, 정작 농사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어려움이 많았어요. 농부님들의 수고나 과정을 잘 모르면서 소개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죠. 상주 지역은 농업에 최적화된 기후라 인구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해요. 마을 대소사도 농사 주기에 따라 흘러가는데, 농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니까 마을 분들과 대화할 때 접점이 적었어요. 그래서 호기롭게 직접 농사를 지어보자 한 거죠. 그것도 친환경으로요! 그땐 마을에 상주하는 청년이 8명 정도 될 때라 굉장히 큰 규모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상근 인원이 3명 정도라 현황에 맞춰서 논 2,000평, 밭1,000평 정도로 많이 줄였죠. 참깨 농사와 쌀 농사, 저희가 먹을 밭농사만 조금 하고요.
저희는 친환경 유기농이지만 마을 분들은 대부분 관행농이죠. 그래서 처음엔 “그러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잘 된다”며 여러모로 답답해하셨죠. “그렇게 해서 언제 돈 벌래”, “괜히 시골에서 농사하지 말고 도시가서 편하게 살라”며 걱정하시고. 처음에는 어르신들께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이제는 적당히 요령도 생기고 친해져서 “네, 할아버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말아요(하하). 좌충우돌 하면서 저희대로 꾸준히 해왔을 뿐인데, 예전만큼 잔소리를 많이 하진 않으셔요. 뭘 하든, 답답하든, 안타깝든 별 말씀 안 하시거든요. 저는 이런게 좋더라고요. “그냥 얘들은 그런가 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시는 거잖아요.
- 지금은 마을 어르신분들과 동아리 활동이나 마을리빙랩 같은 사업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처음부터 관계 형성이 쉬웠던 건 아닐 것 같아요.
= 모든 분들이 다 저희를 반가워하시는 건 아니예요. 어떤 분들은 외지 청년들인 저희가 마을에 있던 학교를 사용하는 걸 ‘뺏겼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게 결국 마을 활동까지 연결되는 거죠. 학교 뿐만 아니라 동네도 하나의 공간이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사람이 드나드는 게 반가울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바뀌는 게 불편하고 싫으실 수도 있죠. 지금도 인사를 안 받아주시는 분들이 간혹 계셔요. 근데 거기에 몰입해서 속상하고, 화나고 그렇진 않아요. 관계를 억지로 풀려고 하지도 않고요. 마을 안의 관계를 제 마음대로 다 할 수도 없고, 각자의 생각과 입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을과 접점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열심히 진심으로 주민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
|
|
▲ 친환경농업은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주요 활동이자 주 수입원이다. 청년 여성들이 농촌과 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
|
|
▲ 농사일로 바쁜 틈틈이 학교와 관사를 관리하고 가꾼다. 웬만한 수리 작업은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
|
|
🏩‘청년을 위한 학교’가 ‘마을을 위한 학교’가 되기까지 |
|
|
- ‘달두개학교’라는 이름으로 폐교를 활용한 지역살이 프로그램과 주민 동아리 운영을 하게 된 것도 처음 계획에는 없던 일이네요.
= 1964년에 개교했다가 2011년 폐교한 은척중학교의 분교에요. 이후 멘토님이 마을 학부모님들과 교실 하나를 임대해 청소년 공부방으로 써 오셨는데, 청소년들이 자라서 지역을 떠나니 공간이 남게 됐어요. 그러다 2017년에 저희가 조합을 만들면서 이곳을 활동 거점으로 삼아 활용하게 된 거고요. 지금은 조합이 교육청에 비용을 내고 장기로 임대하고 있어요. 연간 임대료만 약 500만원 정도이고, 전기료와 난방비, 관리비는 별도고요. 지금 같은 공간은 6~7년에 걸쳐서 돈과 여유가 생길 때마다 직접 하나 하나 고쳐온 결과물이예요.
공간을 조금씩 넓혀가다보니 저희끼리 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어요. 학교를 동아리방, 문화센터 삼아 활용하는 거죠. 지역 주민분들을 알음알음 모아 태극권을 배우는 동아리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좋은 경험이셨나봐요. 이후에 “나도 기여해보고 싶다”면서 강사로 지원하는 분들이 생기면서 술 빚기, 인문학, 인물 드로잉 같은 수업이 하나 둘 생겨났어요. 집기를 직접 가져와서 공간을 채우기도 하시고, 화단을 관리해주시기도 하고. 책을 읽지 못해도 인문학 모임엔 꼭 참석하시는 마을 할머니도 계시고요.
학교가 마을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된 거예요. 그러면서 2022년에 학교에 ‘달두개학교’라는 새 이름을 붙이게 됐고요. 지금 1층에는 조합이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해 식음료를 파는 카페가 있고, 그 옆에는 공유부엌, ‘작은도서관’, 그리고 조합 사무실이 있어요. 2층에는 ‘마수리공작소’ 같은 작업 공간이나 체력 단련실 같은 활동 공간이 있고요. 주민들께 임대료나 사용료를 받고 있진 않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직접 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두고, 누구든 잘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학교 앞 텃밭도 분양해요. 상주 시내는 물론이고 문경, 안동, 화성처럼 먼 데서도 오세요. 저희가 텃밭을 다 관리하기 힘들어서 분양을 시작한 건데 그렇게도 관계가 이어지더라고요. 저희랑 인연 맺은 뒤로 지역 주민 대상으로 요리 수업을 열어주신 분도 있고, 짧은 체류 프로그램으로 오셨다가 "더 있어보고 싶다" 하셔서 장기로 계신 분도 있고요. 그러니까 저에게는 이런게 사업 하나, 사람 한 명, 다 따로따로가 아니라 저희랑 관계 맺는 방식이 계속 바뀌어가고 넓어지는 걸로 보여요. 구매자가 방문자가 되고, 관계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신기하고 재밌어요.
- 농사만으로도 바쁠텐데, 공간 운영에 지역 활동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 조합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수입과 운영 기반도 궁금하고요.
= 조합이 하고 있는 활동은 크게 다섯 가지예요. 첫째는, 지역 친환경 유기농산물 가공과 판매. 둘째는 직접 친환경 농사(협업농장) 운영해 농작물 생산. 셋째는 카페, 목공방, 동아리방 등 폐교 공간 활용과 운영, 관리. 넷째는 지역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청년 플랫폼’으로서 도시 청년이나 시민이 오갈 수 있는 다양한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요.
공간 운영이 진짜 만만치 않아요. 관리하는 건 눈에 안 보이는데, 또 관리 안 하는건 바로 티가 나거든요(하하) 풀은 금방 자라지, 오래된 건물이라 비도 새고, 고칠 곳도 계속 생기고. 제대로 청소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절대 안 끝나요. 가끔 교육청에서 부분적으로 수리를 지원해줄 때도 있지만 충분하진 않아서 웬만하면 저희가 직접 해결해요.
주요 수입원은 농산물 판매 수익이에요.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중심으로 수매해서 도시에 있는 구매자들에게 판매해요. 필요에 따라 지자체, 공공 기관이나 민간 단체 지원 사업을 받을 때도 있어요. 다만 지원사업은 최소한으로만 활용해요. 이주 초기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큰 규모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자부담 비용과 성과 부담이 굉장히 컸거든요. 공간을 고친다고 사람이 저절로 오고, 폐교를 손본다고 청년이 남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하드웨어 지원이나 일회성 사업 보다는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사람의 역할과 운영 경험이 남는 사업인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요. 최대한 외부 자원이 아닌 자체 자원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
|
|
▲ 학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인 ‘달두개 마을카페’는 마을 사랑방 기능을 하고 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과 지역에서 직접 기른 유기농산물을 활용한 식음료를 판매한다. ⓒ희망제작소 |
|
|
▲‘달두개학교’ 1층에 위치한 (좌) 공유부엌, (우) 달두개 작은 도서관 ⓒ희망제작소 |
|
|
🌤️ 관계를 돌보는 사람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하니까 |
|
|
- 처음의 설렘, 기대만으로 지역에 계속 남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농촌 생활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나요?
= 이주 1년쯤 됐을 때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마냥 재밌었는데, 점점 시골 생활이 너무 힘든 거예요. 겨울에 너무 춥고, 불도 직접 때야 하고. 삼시세끼 밥도 다 직접 해 먹어야 하고. ‘부모님 댁에 살았으면 적어도 춥고 배고프진 않았을텐데. 왜 사서 고생하고 있지?’ 싶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결국 멘토님께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엄청 만류하셨는데 제가 너무 단호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결국 그러라고 하시더라고요.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멘토님이 마지막으로 “운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느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네가 살아온 환경, 말, 사람들이 쌓여서 지금이 된 거다”라고요. 남으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도 아니고, 저도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그 말에 바로 짐 가방을 풀었어요. 어쩌다 상주에 오게 된 거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동안 조금만 힘들면, 잘 안되면 쉽게 포기하면서 도망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상주로. 그래서 지금 부모님댁으로 돌아가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살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지역에 사람을 남기는 건 결국 ‘관계’가 핵심이란 걸 체감하게 됐죠. 제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모두 멘토님과 지역분들이 주시는 애정과 도움으로 만들어진 연결, 관계 덕분이니까요.
- 지역에 남기로 결정한 뒤에 달라진 것이 있었나요?
= 정말 신기하게도 제가 불편하다고, 별로라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괜찮네?’ 싶더라고요. 사실 나 이런 거 재밌어하네? 불 떼려고 나무 주워오고, 사람들이 불쑥 찾아오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웃기고 재밌어졌어요. 마음가짐 하나로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꼈던 것도 다시 생각해보니 괜찮았어요. 상주에 살던 다른 도시에 살던, 많은 조합원과 동료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데, 왜 꼭 상주에, 같은 동네에 살아야만 관계가 이어진다고 생각했을까? 나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죠.
저도 마을에 발 붙이고 사는 주민답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청소, 회의, 행사같은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이주 청년이 아니라 동네 주민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데까지 한 5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요즘은 농번기가 아닐 때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 리빙랩’ 같은 사업도 하고요. 이주 초기에는 저도 너무 ‘청년’만 생각한 것 같아요. 마을에 청년만 사는 것도 아닌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죠. 청년-마을-지역이 하나의 점-선-면처럼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청년들이 계속 오가면서 저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마을 주민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아쉬움도 컸어요. 청년들만 중심에 두고 활동하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겠더라고요. 결국 제가 사는 곳은 마을이잖아요. 저도 이 안에서 더 재미있게 살고 싶고요. 처음 왔을 때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속 나이가 드시는 모습도 보이고, 아프거나 돌아가시는 분도 많아져서 너무 속상해요. 이 분들이 너무 좋고 감사해서 언젠가 조합 일을 하지 않거나, ‘달두개학교’ 공간이 사라져도 저는 여기에서 계속 살거예요. 얼마 전에 일이 있어 정말 오랜 만에 부산에 갔는데 어유, 어찌나 번잡하고 기 빨리던지… 이제는 진짜 도시에서 못 살겠더라고요(하하)
- 지역에서 계속 살고 싶고, 조합과 마을 일을 계속 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첫번째는 사람이에요. 제가 힘들어도 도망치지 않게 늘 붙잡아주는 사람들이요. 붙잡는다는 게, 실제로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관계’를 생각하면 남고 싶게, 떠나기 어렵게 되는게 핵심이라는 걸 배웠어요. 힘든 순간을 늘 함께 해주시는 멘토님 내외분, 잘 지내는지 안부 물어주시고, 어디 여행가시면 특산물을 보내주시는 구매자님, 때되면 놀러오고 ‘달두개학교’가 자기 고향같은 곳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이 공간을 정성들여 관리해주시는 주민분들…. 어떻게 이들을 두고 여길 떠날 수 있겠어요.
두번째는 재미예요. 참 이상한 게, 저는 돈 안 되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겁더라고요? (하하) 지난 해 ‘달달일상’이라는 관계인구 프로그램으로 연간 500명 정도가 왔다 갔어요. 공무원분들은 무척 좋아하셨는데, 제가 자랑하고 싶은 사업은 따로 있어요. ‘참깨크루’요. 이건 진짜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거든요. 주민 동아리나 마을 활동도 당장 돈이 되는 일은 아니죠. 장기 체류하는 청년에게 숙소를 무료로 내어주는 것도 그렇고요. 여기가 궁금하고 좋아서 왔는데, “참가비 얼마 낼 거야?”라고 묻는 관계가 되긴 싫어요. 제가 투자한 시간과 노동력이 전부 돈으로 남아야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는 재미가 남으면 돼요.
물론 계속 무료로 할 수도 없다는 것도 알죠. 공간 유지도, 사람 맞이도 전부 돈과 노동을 쓰는 거잖아요. 제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돈이 되는 구조로 연결하고 싶어요. 아직 잘 하지 못하지만, 언젠간 하지 않을까요? 결국 다 여기서 오래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죠. 걱정되고 고민도 있지만 막 불안하진 않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싶달까? 그냥 제 성격이 원래 그런가봐요(하하). 어쨌든 난 이 동네에서 계속 살 건데, 조합 운영을 거의 10년을 해냈는데, 어디서 뭐든 하지 않을까? 학교도 만약 교육청에서 갑자기 가져가겠다고, 임대 못 주겠다고 하면? 들고 일어서든, 주민 회의를 하든(하하)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지 싶어요. |
|
|
▲지역살이 프로그램 참여자, 마을 주민, 관광객부터 어린이, 청년, 중장년, 노년까지. 관계와 세대 불문, 다양한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고 제안하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
|
|
- 앞으로 ‘달두개학교’와 마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나요?
= 학교는 할 수 있는 한 계속 운영하고 싶어요. 공간 임대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공간 용도도 더 유연해지면 좋겠어요. 지금은 교육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수익 사업을 하기엔 제한이 많거든요. 더 확실한 수익 기반과 구조도 만들어야죠. 다른 청년들에게 여기서도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단걸 보여주고 함께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청년이 마을과, 마을이 지역과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해요. 집과 일을 따로 꾸리면서도, 필요할 때에는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관계. 예를 들어 청년농은 농작물을 학교로 보내고, 공유부엌에서 주민이 요리를 하고, 밥을 차려 먹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그런 풍경이 일상이면 좋겠어요. 청년을 위한 복지와 어르신을 위한 복지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누구든 이 마을에서 즐겁게, 살만하게 지내는 게 필요하다 생각하고요.
그걸 저라는 개인이 할 수 있냐고 물으면, 글쎄요.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고,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물으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할 것 같아요. (하하) 하지만 저는 누구보다 그렇게 살겠다는 명확한 의지와 확신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혼자가 아니니까요. 여기서 응원해주시는 주민들, 늘 함께 애써주시는 멘토님, 각자의 지역에서 인연을 맺고 있는 친구들,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그게 다 제 자산이죠. 그러니 지금까지 해온 것 처럼, 차근차근 해나가다보면 뭐라도 해내지 않을까요?
🔆 청년이그린협동조합과 연결되기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상품 온라인 구매처 : 달두개상회
✅인스타그램 : @mmon_school |
|
|
희망제작소는 지역과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풀어가는 사람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하고, 이들을 발굴·연결해왔습니다. 2026년에는 KB금융그룹과 함께 청년이 지역에서 자기 일을 만들고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이 인터뷰는 2026 소셜디자이너 사업과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로 이어지는 여정의 일부로 제작되었습니다.
인터뷰: 안영삼 사회혁신팀 팀장,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글: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
|
|
희망제작소 20주년
정기 및 일시 후원을 약정해주시는 분께
희망제작소 책자 & MAKE HOPE 스포츠짐색을 드립니다. |
|
|
( 이혜린 ) 님은 무엇을 희망하십니까?
네. ( 시민의 행복 )을 희망합니다!
|
|
|
"그동안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가정과 시설에 후원을 해왔어요. 그들이 정말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요. 희망제작소에는 사회가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후원합니다. 희망제작소의 활동과 연구는 가정이나 시설 수혜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서요. 시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시민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
|
|
희망제작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92 | 02-3210-0909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