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소셜디자이너 | 전경선 바람개비마을 대표 @경남 남해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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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만 원, 매주 수요일 밥상… 마을 돌봄이 굴러가는 법”
전경선 바람개비마을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경남 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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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어디 가셨어요?” “요양원 갔잖아”
마을 워크숍 사진을 정리하던 전경선 대표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지난해 사진에는 계신 분인데 요즘 보이지 않았거든요. 사진 속 주민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오토바이로 마을을 오가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과 산책을 다니던 할머니는 병세가 심해져 요양원에 갔답니다. 마을에서는 한 해 한 명꼴로 주민이 요양원으로 떠나고 있었습니다. 한 평생 땅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온 곳인데, 왜 아픈 순간에는 마을을 떠나야 할까요?
전 대표는 오래 전부터 좋은 사람들과 좋은 뜻을 나누며 마을을 가꾸고 사는 ‘스머프 마을’을 꿈꿨습니다. 2024년에는 주민들과 “우리 마을이 조금 더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주제로 네 차례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주민들이 그린 그림에는 큰 건물이나 수익 사업이 아닌 꽃밭과 바람개비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마을 꽃밭 가꾸기와 바람개비 만들기가 시작됐습니다. 비어 있던 마을회관 2층은 수리를 거쳐 ‘바람개비학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홀로 사는 주민을 살피는 ‘삼삼오오 안심편지’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잠시 머무는 ‘인생하숙집’ 사업이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마을 특산품과 체험 상품을 판매하는 ‘내동천상회’를 준비하며, 수익을 돌봄에 환원하는 구조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프라를 이야기할 때 공간, 시설, 개발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반면 내동천마을의 실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인프라가 될 수 있는지에 주목합니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내동천마을에서 주민의 삶을 연결해 농촌 마을의 자립을 실험 중인 소셜디자이너 전경선 바람개비마을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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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동천마을 마을회관 2층에 조성된 바람개비학교에서 만난 전경선 대표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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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머프 마을’을 꿈꾸던 사람, 이웃의 빈자리를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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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동천마을에 살았지만 처음부터 마을 활동에 참여하신 건 아니라고요.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바꾸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20대 후반에 “10년 뒤 나는 뭘 하고 있을까?”를 주제로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스머프 마을’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어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뜻을 가지고, 좋은 마을을 가꾸며 살고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날부터 “나는 스머프 마을을 만들 거다. 좋아하는 사람들 모아서 마을 하나 가꾸며 살 거다”라고 떠들고 다녔죠.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고 바빠서 꿈을 접어뒀어요. 그러다 마흔을 넘기면서 그때 그린 그림을 다시 꺼내보게 됐는데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 머물고 싶은 마을을 찾아 다니다, 이곳 남해 내동천마을에 정착했고요. 귀촌 후 2024년에 남해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됐어요.
센터에서 일하며 보니, 여러 마을에서 예산을 쓰며 주민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구하지만 실제 정책이나 변화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형식적인 워크숍이 아니라 “주민들이 낸 이야기 중 하나라도 실제로 해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몇 개 마을에서 워크숍을 진행해야 했고, “그럼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한번 해볼까?” 싶어 이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내동천마을에서 워크숍을 열고, 그때부터 주민들과 본격적으로 어울리며 마을 일을 시작했죠.
- 마을에서 돌봄 문제를 처음 실감한 계기가 있나요? 고령화 문제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마을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배경은요?
=마을 워크숍 때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까 사진에는 계셨던 분이 올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르신들께 “이분 어디 가셨어요?” 물으니까 “요양원 갔잖아” 그러시는 거예요. 맨날 오토바이 타고 다니시던 할아버지도, 아들하고 항상 같이 산책 다니시던 할머니도 언젠가부터 안 보이셔서 어디 가셨냐 물어보면, 비슷해요. “돌아가셨잖아”, “요양병원 갔잖아”.
70~80년, 길게는 90년 가까이 여기서 농사짓고 자식 키우며 살았는데, 정작 나이 들고 병들어 가장 힘이 없을 때는 모든 걸 다 두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잖아요. 한번 떠나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죠.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이건 개인의 가정사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이 차례로 겪게 될 문제구나.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참사에 가까운 고통일 텐데. 그럼 적어도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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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찾아가는 마을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주민워크숍 ⓒ바람개비마을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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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한 ‘주민워크숍’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마을이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 꽃밭과 바람개비가 나왔다고요.
= 2024년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주민들과 네 차례 워크숍을 했어요. “우리 마을이 조금 더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꽃밭과 바람개비가 있는 마을을 그리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같은 주제로 다른 마을에서 워크숍을 해보면 99%는 큰 건물 짓고 1층은 카페, 2층에는 펜션을 해서 마을 수익 사업하자고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마을은 워크숍을 네 번이나 했는데도 단 한 번도 돈 벌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의아했죠. 그래서 “꽃밭 만들고 바람개비 세워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마을에 뭐가 남냐”고 다시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한 어르신은 “우리 마을에 온 사람들이 치유받고 돌아가면 그걸로 된다”고 하셨고요. 너무 감동적이었죠. 그럼 뭐 건물 짓는 것도 아닌데, 행정이나 외부 지원 기다리지 말고 엉망진창이더라도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꽃밭을 가꾸고 바람개비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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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교장이 되고, 주민이 하숙집 주인이 되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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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밭과 바람개비를 만드는 활동이 어떻게 ‘학교’가 된 건가요? ‘바람개비학교’ 운영 방식도 궁금해요.
= 바람개비를 만들 마땅한 작업 공간이 없어 방치된 마을회관 2층을 주민들과 세 달 동안 직접 수리했어요. 막상 고쳐놓고 보니 작업장으로만 두기엔 아까웠죠. 주민들과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써보자 해서 ‘바람개비학교’가 됐어요. 여러 주민 대상 프로그램이 열리는데, 강사료 받고 오시는 분은 한 명도 없어요. 다들 자기 시간과 재능을 나눠주시고, 오히려 본인 돈을 놓고 가는 분도 계세요. ‘함께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같이 나누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바람개비 제작도 그렇게 시작됐어요. 청주에서 아이들과 바람개비를 만드는 신부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연락드렸는데, 이효종 신부님이 남해까지 오셔서 폐페트병으로 바람개비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처음에는 사비로 재료를 마련했지만, 지금은 마을을 다녀간 분들이 전국에서 페트병을 보내주시고 남해군 생활폐기물 매립시설에서도 따로 선별해 보내줘요. 그렇게 주민과 아이들이 만든 바람개비가 지금은 마을 곳곳에 1,200~1,300개 정도 세워져 있죠.
바람개비학교 교장은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이라 “네가 교장 할래?” 물었더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름만 교장이 아니라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제안하고, 사람들 앞에서 인사와 소개도 해요. 간식을 정하고 간식비를 관리하는 권한도 있고요. 군수가 와도 자기가 교장이라고 소개하고 인사를 받아요. 학교 안에서 자기 몫과 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아이의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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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주민과 아이들이 청주청소년문화센터 이효종 신부에게 폐페트병을 바람개비로 만드는 방법을 배운 후, 직접 1,200여 개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마을 곳곳에 세웠다. ⓒ바람개비마을사회적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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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사는 주민의 안부를 편지로 확인하는 ‘삼삼오오 안심편지’도 운영하신다고요.
= 재작년에 옆 마을에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틀 후에 발견된 일이 있었어요. 우리 마을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동네를 돌아보니, 실제로 산골짜기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마을 중심부와 떨어져 있어서 안부를 자주 확인하기 어려운 분이었죠.
고민 끝에 마을 아이들과 함께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다섯 명이 쓴 편지를 한꺼번에 보내지 않고 한 통씩 나눠 보냈어요. 그러면 우체부 아저씨가 사흘에 한 번꼴로 할아버지 댁에 가게 되잖아요. 여기에 이장님과 면사무소 복지팀의 방문까지 더하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누군가 할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겠더라고요. 별도의 사람이나 예산을 새로 만들기보다, 이미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역할을 연결한 거죠.
편지를 쓰기 전에 아이들과 사전 학습과 준비도 했어요. 단순히 ‘도와준다’는 마음만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죠. 예를 들어 좋은 뜻으로 찾아가더라도 여러 사람이 낯선 집에 한꺼번에 들어가 목욕을 시키고 물건을 치우면, 당사자는 자기 뜻과 상관없이 ‘봉사활동을 당한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같은 주민으로서 할아버지가 그런 기분을 느끼시지 않도록, 속도를 맞추고 거리를 지키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자고 정했어요. 편지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관계를 맺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 편지로 안부를 묻는 데서 나아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마을 안에 머물 공간도 만드셨네요. 요양시설을 새로 짓는 대신 ‘인생하숙집’이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 조합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건 마을 어르신 두세 분이 함께 지낼 수 있는 ‘농촌형 노인그룹홈(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이에요. 그런데 현행 제도에서 노인공동생활시설은 최소 10인이라, 작은 농촌마을이 운영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실제 필요와도 맞지 않아요. 조합이 사회복지기관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정식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노인그룹홈으로 가기 전, 중간 단계로 만든 곳이 ‘인생하숙집’이에요. 병원에서 퇴원한 뒤 바로 혼자 지내기 어렵거나, 일시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단기간 머무는 공간이죠. 업체나 기관이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하숙집 주인이 되어 한 분을 함께 돌보는 방식이에요. 마을 안에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주민들이 있어 가능했던 방식이기도 하고요.
공간은 1979년에 지어져 방치된 옛 마을회관을 활용했어요. 내부 살림을 마련하려고 ‘살림장만 챌린지’도 했어요. 필요한 물품 목록을 적어 들고 다니며 80명 정도를 만났어요. 남해군청 공무원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비용을 보태고, 주민참여예산과 삼동면 포괄사업비도 확보했어요. 건물 공사에 참여한 분들도 자재를 대신 구하거나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아주셨고요.
- 누가 ‘만들어준’ 시설이 아니라, 주민과 행정, 지역 안팎의 사람들이 돈과 물건, 기술을 나눠 ‘함께 만든’ 공간이라 더 의미가 있네요. 실제로 운영해보니 어땠나요? 처음 생각과 다른 점도 있었나요?
= 마을 한가운데 있어서 주민들이 오가며 안부를 살피기에 좋은 자리인 게 인생하숙집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첫 이용자를 모셔보니 그게 가장 큰 불편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아파서 편하게 입고 쉬고 싶은데, 주민들이 계속 병문안을 오고 누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마음 놓고 쉴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걸 안 이후로는 머무는 분이 먼저 선호하는 방문 시간을 정하고, 주민들은 그 시간에만 찾아가기로 했어요.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언제든 드나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마을의 친밀한 관계는 돌봄에서 중요한 자원이지만, 당사자의 휴식과 사생활을 지키는 규칙도 함께 필요하다는 걸 첫 운영을 통해 배우게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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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을회관이 들어서며 22년 간 방치됐던 옛 마을회관(왼쪽)을 고쳐, 일시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머무는 인생하숙집(오른쪽)을 만들었다. ⓒ바람개비마을사회적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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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달 1만 원, 매주 수요일 밥상… 이 마을 돌봄이 굴러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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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하숙집을 운영하시면서 행정 지원이나 비용 구조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 현재 운영비는 ‘재정관심이’ 스무 명이 매달 1만 원씩 보태는 방식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남해군이 농어촌 기본소득 지역이라 마을 주민들에게 월 15만 원이 지역화폐로 나오는데, 그중 1만 원을 마을 돌봄에 나누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자금이에요. 매달 모인 20만 원으로 공과금을 내거나 수리비로 비축해두고요.
“인생하숙집을 도 단위 통합돌봄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등록해보면 어떻겠냐”는 행정의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면 내동천마을 주민뿐 아니라 남해군민도 이용할 수 있고, 인건비와 운영비도 받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상하게 선뜻 “하겠다”고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돈을 받게 되면 지금까지 이웃들이 힘을 모아 함께해온 돌봄이 누군가의 ‘일’로 비춰질까 봐 걱정됐어요.
예전에는 옆집이 아프면 죽 한 그릇 끓여다 주고, 반찬이 있으면 나눠 먹었잖아요. 그런 자연스러운 돌봄을 돈을 준다는 이유로 특정한 사람에게만 맡기면, 다른 주민들은 더 이상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조합은 ‘인생하숙집’ 사업을 ‘봉사’라고 부르지 않아요.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보태 이웃을 함께 돌보자는 취지라고 말씀드리고 있고요.
물론 그렇다고 돌봄에 들어가는 노동을 계속 자발성에만 맡길 수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주민의 관계를 지키면서도 필요한 노동에는 어떻게 대가를 마련할지, 통합돌봄 체계와 어느 정도까지 결합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실험해가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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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의 개인과 단체가 교육과 후원, 자문 등으로 바람개비학교와 인생하숙집 운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희망제작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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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개비학교부터 인생하숙집, 안심편지 등 마을에서 정말 많은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네요. 마을 일들을 주민들과 어떻게 의논하고 결정하나요?
= “몇 월 며칠 몇 시에 회의합시다” 이렇게 말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대신 매주 수요일 함께 밥을 먹는 ‘수요밥상’이 있죠. 밥을 먹으며 서로 안부를 묻고, 밥상을 치운 뒤 할 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나누고 결정해요. 수요밥상이 밥상머리 회의인 셈이죠.
식사하는 주민들이 한 달에 1만 원씩 식비를 내고, 공동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반찬으로 올려요. 마을에 손님이 온 날이면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고 함께 먹고요. 4년 전 이장님의 제안으로 시작해서 지난해까지 집계된 누적 참여 인원만 2,400명 넘어요. 따로 회의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매주 얼굴을 보고 밥을 먹으니, 누가 아픈지 어떤 일이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인생하숙집’ 같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자연스럽게 주민끼리 생각을 나누고 역할을 정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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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 제안으로 시작된 ‘수요밥상’. 주민들은 매주 수요일 함께 밥을 먹으며 안부를 묻고 마을 일을 의논한다. ⓒ바람개비마을사회적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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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책보다 먼저 필요한 것, 마을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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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과 여러 사업을 함께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서 “행정의 속도에 끌려가면 안 된다”고도 하셨어요. 그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바람개비학교를 만들려고 주민들과 세 달 동안 마을회관 2층을 고쳤잖아요. 군청 공무원에게 “행정에서 이 정도 공간을 리모델링하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이틀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행정은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주민들은 의견을 나누고 손발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그 사이를 조율하면서 행정의 속도, 주민의 속도, 심지어 제 속도까지 모두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행정 지원을 받으면 정해진 기간 안에 결과를 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행정의 속도에 맞추게 돼요. 주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 역할을 찾기 전에 일이 진행되고, 지원이 끝나면 사업도 멈추기 쉽죠. 행정이 빠른 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에요. 마을이 따라갈 수 있도록 중간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거죠.
저는 마을이 ‘밭’이라고 생각해요. 밭이 비옥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서로 다른 정책이 내려와도 마을이 자기 형편에 맞게 받아 쓸 수 있어요. 인생하숙집에도 보건복지부의 통합돌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 기본소득, 행정안전부의 사회연대경제 자원이 연결되어 있어요. 각 부처에서 따로 내려온 정책이지만, 마을에서는 한 사람의 삶을 돌보는 일로 만나야 하죠.
주민들이 함께 움직일 기초가 없으면 좋은 정책과 예산도 사업이 끝나면 사라져요. 그래서 이미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을 활동가나 조합 구성원들이 중요해요. 마을의 필요에 맞게 자원을 연결하고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키우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밭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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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의 일상과 관계를 바탕으로 ‘자립형 농촌 돌봄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내동천마을 ⓒ바람개비마을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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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지인으로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신뢰와 참여를 얻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 마을 활동가는 주민들과 삶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하다 필요할 때만 이장님, 동네 사람들 만나 뭐 하자고 하면 당연히 주민들도 저를 그냥 ‘일’로만 대하겠죠. 그래서 저는 마을 안에 살면서 제 ‘일’과 ‘삶’을 따로 구분하지 않기로 했어요. 마을 일이 제 일상이고, 마을이 제 터전이고, 저에게 그런 사업과 활동이 필요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민들에게도 처음부터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바람개비학교를 수리할 때도 제가 먼저 움직였고, 그 모습을 보신 어르신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하셨어요. 나중에는 “제발 우리가 도울 일을 달라”고도 하셨고요(하하). 말로만 참여해야 한다고 하거나, 입으로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마을 주민으로서 먼저 행동했더니 하나둘 함께해주신 거죠.
성과가 생겨도 저는 뒤로 빠지고 이장님과 주민들을 앞세워요. 마을 주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먼저 알리고 인정하면 주민들도 자신이 마을의 주인이라는 걸 느끼고 다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거든요.
주민 조직,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이론이 아무리 빠삭해도, 내 잘남을 앞세운다고 마을 사업이 잘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한 개인이 앞장서고 성과를 계속 제 것으로만 만들면 마을 일은 오래가기 어렵죠. 제가 기획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제 방식만 고집하거나 계속 붙잡고 있어서도 안 되고요. 이건 제 사업이 아니라 마을과 조합의 일이잖아요. 혼자서 다 할 수도 없고요. 그럼 당연히 주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죠. ‘철학은 사람이 없어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배웠거든요.
- 미래에 어떤 모습이 그려지면 내동천마을의 실험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른 농촌 마을이 바람개비협동조합을 참고하려면 어떤 고민이 필요할지도 궁금합니다.
= 계속 나이 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이웃과 살아가고, 돌봄 부족을 이유로 떠날 필요가 없는 마을이길 바라죠. 그런 면에 마을은 ‘성공’하더라도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고요. 우리 마을이 자립형 농촌 돌봄 마을로 자리 잡으면, 그 과정과 운영 방식을 정리해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다른 농촌 마을과 나누고 싶어요.
다만 저희 마을의 사업을 그대로 따라 만드는 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껍데기만 가져가는 일이잖아요. 마을마다 사는 사람도, 가진 자원도, 필요한 일도 다르니까요. 다른 곳과 공유하고 싶은건 “주민이 주체가 된다”는 원칙과 방법이에요. 사업을 먼저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을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강점을 먼저 살펴본 뒤, 서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하나의 사업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죠.
귀촌 초기에는 저도 농촌 마을이 다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70세, 80세가 넘어도 어르신들 다 저마다 주민으로서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 재미를 느끼는 요소가 있으시더라고요. 농촌도 충분히 생동감 있고 즐거운 터전이에요. 이런 마을이 하나 둘 생겨나다 보면, 농촌도 더 살 만해지지 않을까요?
🔆 바람개비마을사회적협동조합과 연결되기
✅인스타그램 : @naedongcheon
✅쓰레드 : threads.com/@naedong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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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지역과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풀어가는 사람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하고, 이들을 발굴·연결해왔습니다. 2026년에는 KB금융그룹과 함께 청년이 지역에서 자기 일을 만들고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이 인터뷰는 2026 소셜디자이너 사업과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로 이어지는 여정의 일부로 제작되었습니다.
인터뷰 및 글: 안영삼 사회혁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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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20주년
정기 및 일시 후원을 약정해주시는 분께
희망제작소 책자 & MAKE HOPE 스포츠짐색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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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혁 ) 님은 무엇을 희망하십니까?
네. ( 지역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기 )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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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향과도 같은 곡성에서 건강한 농업이라는 주제를 택하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20대의 시간을 농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일하며,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여러가지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같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을 응원하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저부터 노력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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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92 | 02-32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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