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보다
1994년, 노원구 상계동에 막 신도시가 들어설 즈음 그는 동네 첫 책방인 노원문고를 열었습니다. 대학시절엔 민주화운동을 했어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에서 활동했답니다. 출판사에서 3년 일하다 책방을 냈습니다.
“서점은 순전히 돈 벌려고 했어요. 그때는 돈벌이와 사회적 기여를 이원화했거든요. 책을 판 만큼, 그것도 몇 달 뒤에 출판사에 돈을 지불하는 ‘위탁판매’라 큰 자본이 없어도 됐어요. 당시에 한국에 대형서점은 교보, 종로 정도밖에 없었어요. 지역도서관이 생긴 게 2005년이죠. 그만큼 독서환경이 척박했어요. 나오는 책이 이렇게 많은데 서점이 작아서 되겠나 했죠.”
넓고, 싸고, 위치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에 150평 규모로 문을 열었어요. 어떻게 서점까지 발길을 이끌까? 그는 당시 교과서 지정 판매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현금으로 제값을 치르고 교과서를 사 날랐습니다.
“사람들이 교과서 사러 왔다 다른 책도 보는 거죠. 당시엔 교보에서도 책만 팔았는데 노원문고엔 문구도 들였어요. 새 학기에 책 사면서 학용품도 보잖아요.” 현재 ㈜노원문고는 6곳, 문구점 2곳으로 확장했습니다.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재투자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져요. 그런데 한국에선 돈이 모이면 다들 부동산을 해요. 저는 부동산이 없잖아요. 노원문고에선 디자이너를 두 명씩 썼어요.” 그는 노원문고를 열고 1년 뒤부터 매달 기부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서점에 온 부부들을 보며 이런 ‘이원화’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서점으로 돈 벌 생각뿐이었는데 지역 사람들이 서점을 좋아하는 거예요. ‘내가 있는 곳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라는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결’은 더숲 이전 일 복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사회혁신공간데어 이사장,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등 일 많은 직함이 여럿이었어요. 노원구청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으로도 6년 일했습니다. 지역 취약계층에 장학금,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단체였습니다.
“사회복지는 기본적인 거예요. 그걸로는 부족해요. 행복감을 주려면 문화복지가 중요하더라고요. 중산층이 구심점이 돼야 해요. 중산층 모임이 형성되고 이들이 지역에 관심을 가질 때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지금은 사는 곳이 그냥 잠자는 곳이잖아요.”
노원교육복지재단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립도서관 ‘휴먼라이브러리’를 만든 이유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사람이 책인 도서관이에요. 책이 되고 싶은 사람이 도서관에 자신을 등록하고 그 ‘책’을 ‘대출’한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멘토 대여 시스템인 셈이죠. “처음에 600여 명이 ‘책’으로 자신을 등록했어요. 그런데 사실 ‘인간책’은 매개체였어요.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형성돼 지역에 관심이 커지길 바랐는데, 거기까지 나아가진 못해 실망스러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