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비결은 ‘갈등 추적 매뉴얼’
협동조합 팜앤디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 계기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벌인” ‘청춘작당’(2019~2021년)입니다. 청년들이 살아보고 지역에 정착하도록 돕는 ‘청년마을 사업’은 보통 3년 정착률이 1%를 넘기 힘든데 100일 동안 곡성에 살아보는 ‘청춘작당’은 참가자 90명 가운데 26명이 3년 이상 곡성에 남았습니다. 한 기수에 30명씩 뽑았는데 400명씩 지원했습니다. 지원서엔 질문이 빼곡한 설문지가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팜앤디는 지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세부 데이터를 축적하고 타겟 마케팅을 벌였습니다.
‘청춘작당’ 프로그램의 세포마다 팜앤디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의 개념을 집어넣었습니다. “혼자 와서 우리가 되는 곳”입니다. 그러려면 ‘형질변경’이 필요합니다. 갈등은 필연입니다. 서 대표는 청춘작당의 성공 이유로 ‘갈등 추적 매뉴얼’을 꼽습니다.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관계를 끊는 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시작해요. 싸워야죠. 싸움이 없는 건 갈등까지 가지 않은 아주 가벼운 관계라는 거죠.”
생판 모르는 사람들 5명씩 한 집에 삽니다. 첫 20일은 자기 자신과 지역을 알아가고 이후 50일 동안 게임처럼 지역이 내준 ‘퀘스트’ 2개를 주민과 함께 깹니다. ‘농가 딸기 체험 마케팅해주세요’ ‘도자기 명인 작품의 새로운 패키징을 만들어주세요’ 등입니다.
이 험난한 게임을 거치면 지역 네트워크 생깁니다. 마지막 30일 동안은 전시, 취업박람회 등을 함께 열어요. 이 모든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룸메이트와, 팀원끼리 오만가지 갈등이 쌓이고 터집니다. 운영진에겐 이를 다루는 비기가 있습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매뉴얼이에요. 갈등의 단계를 설정해 놓고 운영진이 어떻게 조정해 가야 하는지 세세하게 집대성했어요. 그 매뉴얼은 대외비예요.” 2년 동안 ‘추적’한 갈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닉네임 톰과 디디가 싸우고 말을 안 합니다. 둘이 말을 섞을 수밖에 없도록 은근슬쩍 술자리를 만들고, 같이 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주고, 일대일 상담도 하고, “이걸 무한 반복해요. 해결되지 않는 갈등 하나 때문에 커뮤니티 전체가 못하는 게 많거든요.” 톰과 디디는 곡성에 정착했습니다. “지금 둘은 친구예요. 만날 싸우는데 또 잘 풀어요.”
그 100페이지 매뉴얼에는 팜앤디 초창기 멤버 4명이 겪은 온갖 갈등과 눈물이 녹아있습니다. “엄청 많이 싸웠어요. 제가 가출해서 애들이 저 잡으러 광주에 오고 그랬어요. 지금은 저희만의 규칙이 있어요. 커뮤니티엔 공동의 목표가 있잖아요. 개인의 다양성은 존중하되 각 개인의 성향, 욕망 탓에 공동의 목표가 왜곡되면 안돼요.” 더 동글동글하게 깎이는 과정은 괴로웠습니다. 왜 깨버리지 않았을까요?
“그게 공동체의 핵심인 거 같아요. 내가 빠졌을 때 커뮤니티에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하면 쉽게 못 빠져요. (젊은이들이) 커뮤니티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커뮤니티를 만들기까지 과정이 싫은 거죠. ‘타인’을 위한 ‘내’가 돼야 하니까요. 배려, 양보, 주장, 설득, 대립 다 포함돼요. 공동체가 행복하냐고 저한테 묻곤 해요. 애초에 행복이랑은 다른 개념이에요. 공동체는 개인에게 좋은 영향을 확실히 줘요. 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돼요. 저도 원래 성격이 불같았어요. 앞뒤 안 가리고 틱틱 쏘고요. 이제 조절할 수 있어요. 상대에 맞게 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요. 이건 ‘행복’이 아니라 ‘좋은 거’예요. 좋은 건 힘들어요. ‘힘들지만 좋다’이지 ‘즐거워서 좋다’가 아니에요.”
‘청춘작당’ 1기가 끝나자 24명이 남겠다고 했는데 16명이 집을 구하지 못해 돌아갔습니다. 팜앤디가 청년마을프로젝트 ‘청촌’을 시작한 까닭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택공사(LH)와 함께 빈집을 리모델링해 청년들에게 10년 장기임대했습니다. 입주 조건은 딱 하나예요.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함께 하는 거예요.”
27살에 곡성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집뿐 아니라 관계도 맨땅에 지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그가 정착한 화양마을 담벼락을 꾸미겠다는데도 주민들이 반대했어요. 지금 화양마을 담은 무지개색입니다. 인사하고 일손 돕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서울 대학생들의 ‘힙’한 옷을 화양마을 노인들이 입어보는 패션쇼도 벌였어요. “처음엔 안 한다고 하시다 다 하세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닉네임’을 정했습니다. 햇님, 국화…“‘산토끼’를 두고 두 할머니가 싸우셨는데 한 할머니가 다람쥐로 양보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