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 도시락을 싸던 여고생, 이제 나를 먹이네
시골 마을이 고향인 ‘바람’은 어린 시절을 되짚어 보면 따뜻했던 기억이 딱 하나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딱 하나.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어. 아스라해. 내가 9살 때인가, 10살 때인가. 가족들이 솥을 들고 냇가로 소풍 간 거 같아. 복사꽃. 그 분홍빛.”
고등학생 때 그는 아침이면 재료를 아껴가며 반찬을 만들고 남동생 도시락을 쌌습니다. 남동생 도시락을 채우면 자기 도시락에 넣을 반찬이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의 어린 등을 토닥이지 않았습니다.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이었죠.
그는 이후에도 여럿을 먹였습니다. 지금은 절 먹입니다. 제가 그의 이 이야기를 들은 건 5월 상추를 먹고 9개월은 지난 뒤, 겨울의 끝자락이었습니다. 170센티미터 정도 키가 큰 그는 웃을 때 눈가 주름에 잔물결이 입니다. 흰색 오리털 점퍼를 입고 초승달 같은 웃음을 짓는 그는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자작나무 같았습니다. 이제 곧 5월이 오면, 그는 푸른 상추를 덥썩 물어 상추가 겨우내 품은 그 하얀 즙으로 해갈할 거예요.
지난해 5월, 상추의 날, 비빔밥을 벅벅 비빈 리사는 온갖 식물을 길러내는 여자입니다. 종자기능사부터 제가 이름을 외우기도 힘든 자격증이 여럿입니다. 리사가 만든 도토리묵, 리사가 끓인 수육, 리사가 삶은 감자, 리사가 만든 마파두부밥... 15인분 점심 정도 만드는 게 무슨 큰 일이냐는 배포를 지닌 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배가 고팠을 거예요.
패딩 소맷자락이 새카매지도록 떠나지 않던 지긋지긋하게 긴 겨울, 그는 뚝딱뚝딱 밥을 해 저를 먹였습니다. 몽덕이는 리사만 보면 궁둥이가 떨어져 나가도록 꼬리를 흔듭니다. 너무 얻어먹어 염치가 없지만 저는 꼬리가 없어 흔들 수가 없네요.
대신 제가 동네 아저씨가 직접 잡아 준 낙지로 낙지볶음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인간이면 한 번은 해야 할 거 아닌가요. 플라스틱 통에서 살아 꿈틀대는 낙지를 바라만 보고 있는 제게 리사가 물었습니다. “손질할 줄 알아?” 채식지향이라면서도 참기름에 찍은 낙지에 환장하는 저는, 산 낙지를 손질해 본 적이 없습니다. 리사가 순식간에 낙지를 낚아채 끓는 물에 넣고 대처버리더니 낙지의 머리를 뒤집어 창자를 끄집어냅니다. 그 순간 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 전날 저녁, 저는 리사와 이런 대화를 나눴더랬습니다. 책 <기후상처>(김현수 등 지음)에 관한 거였어요. “환경 파괴에 대해 죄책감, 수치심을 가지기 마련이지. 그런데 그런 감정에 과해 압도되면 행동이나 감정이 마비되지.”(리사).
저는 욱했어요. “죄책감을 안 느껴서 더 문제 아니야? 당연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인데, 죄책감마저 느끼지 않으려는 거 너무 인간중심적인 거 아니야?” 다음날, 저는 플라스틱 통 속에 남아있는 나머지 낙지들의 꿈틀거림을 보지 않으려고, 그럼에도 낙지가 먹고 싶은 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낙지가 먹고 싶은데 낙지를 죽이는 노동은 리사에게 떠넘긴 저를, 그렇게 낙지를 죽이는 ‘죄책감’을 리사에게 외주한 저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곧 낙지볶음에 밥을 벅벅 비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리사는 중학교에 진학하려고 투쟁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은 낮에 일해 돈을 벌고 중학교는 야간에 다니라고 했어요. 똑똑한 어린 딸은 지지 않았습니다. 고기는 남자들 밥상에만 올랐고, 밥을 한 여자들은 부엌에서 따로 먹었습니다. 허벅지가 탄탄한 이 여자는 이후 여럿을 먹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