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 복숭아밭에서 자란 공동체의 꿈, 다로리에서 본 농촌 마을의 미래
다로리인 서삼열 대표 @청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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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열 대표의 실험은 단순한 귀촌이나 지역 창업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삶의 흐름이 그려지는 곳, 그런 마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농촌이라 하면 너른 논밭부터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그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서의 삶은 사뭇 다릅니다. 한때 ‘귀촌’이라는 말로 쉽게 묶이곤 했던 이주와 정착의 이야기. 그러나 지금 경북 청도군 다로리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합니다.
화양읍에서 차로 10여 분 더 들어가야 닿는 성현산 남쪽 기슭의 다로리 마을. 100년 전부터 기차가 다녔다는 남성현역 옆 기찻길을 따라 형성된 이 작은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입니다. 2014년, 서삼열 대표와 대학 시절부터 공동체 삶을 고민해온 선후배 일곱 가족이 함께 이주하며, 그들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복숭아밭이었던 곳을 정리해 공동체 주거지로 만든 일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다로리인을 설립해 유휴 공간을 카페, 돌봄, 교육 프로그램의 거점으로 전환했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7,654명의 아동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했고, 세 명의 일자리가 생겼으며, 현재는 ‘마을 호텔’이라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하며 지역의 미래를 새롭게 상상하는 중입니다. 마을을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르신의 학교이자, 청년의 실험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소셜디자이너, 서삼열 다로리인 대표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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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로 이주한 지 벌써 11년이 되셨다고요. 어떤 계기로 귀촌을 하신건가요?
=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어요. ‘아이들을 마을 단위로 함께 키울 수 없을까?’ 같은 고민이었죠. 처음에는 지인이 땅을 준다고 해서 의성으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직접 가서 보자고 의기양양하게 대구에서 함께 출발했는데, 도착할수록 다들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의성으로 이주하면 모두 직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무렵 청도 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하던 친구가 청도를 제안해주었고 함께 땅을 보러 다니던 중에 지금의 다로리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청도는 동서로 길게 뻗은 지형이에요. 다로리는 도시 근교에 위치해 있어서 경산이나 대구같은 주변 도시권 문화를 함께 누릴 수 있고, 경산이나 대구로 출퇴근도 가능하겠더라고요. 그렇게 2014년, 일곱 가구가 함께 다로리에 들어왔습니다. 660평 정도 되는 복숭아밭을 사서, 다 직접 정리하고 토목 작업을 해서 집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어요.
- 귀농, 귀촌을 하면 원주민과의 관계가 중요하잖아요. 다로리는 어땠나요?
=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만큼, 처음부터 마을 분들과 관계 맺는 일에 공을 들였어요. 저도 농촌에서 나고 자라 그런 감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같고요. 복숭아밭 부지를 매입하고 처음 마을 분들께 인사드릴 때부터 마을잔치에 선물을 챙겨 갔고, 이사하면 떡을 돌리고, 아이들 돌잔치 때도 떡을 나눴어요. 연말에는 팔토시나 양말 같은 작은 선물을 드리며 마을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려 노력했죠.
다로리 마을은 농사짓는 분들뿐 아니라 코레일에서 근무하다 은퇴하신 분들도 제법 계셔서 이주해오는 그룹에 폐쇄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생활하다보니 동네 어르신들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주신 것도 크고요.
농촌 지역 이주에 대해 이야기하면 원주민-이주민 갈등에 대해 항상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저는 큰 마찰이나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마을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지금 다로리인이 펼치는 대부분의 마을 사업도 주민 분들의 협력이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요.
특히 ‘농촌소멸 대응 빈집재생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금 진행하고 있는 체류형 마을 호텔 사업이 대표적으로 그렇죠. 생활인구 유입을 목적으로 마을 내에 빈집을 활용하는 사업인데, 이 사업을 진행하려면 빈집 10채가 필요했어요. 농촌의 빈집은 저 혼자서는 절대로 그 많은 양을 구할 수 없어요. 특히, 이 마을 출신이신 이장님이 직접 집주인들과 일일히 연결해주시고, 전화도 해주시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죠.
한편으론, 저희가 마을에 어떤 목표를 들이밀거나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것도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냥 삶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게 마을과 저희를 잘 이어준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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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진료소로 사용되던 공간을 재생해서 운영하는 마을 카페 다로리 ⓒ희망제작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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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 그룹이 마을 주민 중 한 명으로 역할을 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마을 단위 활동까지 연결하게 된건가요?
= 주민 분들과 조금씩 관계를 쌓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마을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곳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마을 곳곳의 빈 공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마을 커뮤니티 공간인 살롱 드 다로리도 처음엔 오래된 폐건물이었어요. 예전에 마을 진료소로 사용되었던 곳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어 있던 공간이었죠. 선후배들과 같이 살고 싶은 공동체를 상상했던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빈 공간을 보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마을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상상을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도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농촌에서는 마을에 일이 있으면 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하시는데, 몇 년 전부터 유독 자주 들려오는 방송이 있었어요. 어떤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죠. 그게 매달, 많을 땐 한 달에 두 번 이상 들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게 그냥 슬프고 안타까운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지역 소멸이라는 사회문제를 매일 대면하고 있는 거구나’라는 자각이 들었어요. 이 마을은 결국 나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인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또 하나는 학교의 문제예요. 마을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저희가 이사 왔을 당시에는 아이들이 많을 땐 50명, 지금도 4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졸업도 하잖아요. 물론 한두 명씩 전학을 오기도 하지만, 농촌에서는 학교가 없어지는 순간 마을이 급속도로 무너지게 되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시작됐습니다.
그 무렵 청도군에서 농림부의 농촌유휴시설을 활용한 창업지원사업을 제안해줬고, 주민 협의체를 꾸려 본격적으로 공간 운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22년부터는 사회적기업으로 위탁을 받아, 지금까지 3년째 공간을 운영 중이고요. 처음엔 단순히 “사람들이 오게 해보자”는 정도로 출발했는데, 하다 보니 일들이 서로 연결되고, 사업들도 확장되면서 어느새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조직의 이름은 ‘다로리인’이에요. ‘다로리’라는 마을 이름에, ‘사람’을 뜻하는 ‘인’, 그리고 마을 안을 의미하는 ‘in’을 더한 이름이에요. 마을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뜻을 담고 있죠. 다로리인의 미션은 마을과 학교,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문제를 발굴하고, 그 문제를 공간 기반으로 매력 있게 바꿔보는 겁니다. 현재는 세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돌봄 사업, 공간 재생 사업, 그리고 지역 문제 해결 사업입니다.
- 실제로 돌봄은 지금 농촌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죠. 어떻게 돌봄을 사업으로 연결할 생각을 하게 되신 건가요?
= 다로리인의 주요 구성원은 30~40대 학령기 아동을 둔 세대이고, 귀촌한 분들 중에도 비슷한 상황의 가족이 많았어요. 마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됐죠. 이 지역 초등학교는 방과후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요. 신청 없이 악기 수업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이 제공되고, 졸업할 때까지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드럼 등을 배울 수 있어요. 심지어 수학여행도 전액 지원돼요.
그런데 정작 하교후 시간이 문제였어요.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았고, 도농 간 교육 격차도 실감했죠. 그래서 지역에서 직접 돌봄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어 수업, 마을 탐험, 태권도, 음반 제작, 달리기 훈련, 목공 수업까지 다양하게 운영했고요. 부모님을 위한 디지털 문해력 강의나, 글쓰기 치유 모임도 함께 열고 있어요. 돌봄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어르신들도 프로그램을 원하셔서 청도도서관과 협력해 ‘어르신 시 쓰기 학교’를 운영했고, 전시회도 준비 중입니다.아직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어르신 돌봄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을 돌봄 프로그램을 1년 정도 운영하고 나니, 성과가 꽤 좋았어요. 그래서 청도군의 제안으로 경상북도 공모사업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2024년부터는 ‘자생 돌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저희 마을 포함 4개 마을에 돌봄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게 됐습니다. 성과가 좋다 보니 하반기에는 군에서 “더 발굴해보자”고 제안했고, 추가로 3개 마을이 늘어 현재는 총 7개 마을이 참여하고 있어요. 지금은 지역소멸대응기금을 통해 마을돌봄공동체 육성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7곳의 돌봄공동체 지원을 저희 법인이 운영 중에 있습니다.
마을살이에서 마주한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시도한 아이들을 위한 마을돌봄 프로그램이 청도군의 7곳으로 확장된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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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변천사와 활동 기록이 전시되어있는 카페 다로리 ⓒ희망제작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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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빈 공간을 발굴해 '머무는 마을'로 가는 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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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공간 재생 사업도 진행 중이시잖아요. 농촌의 빈집 활용 정책은 이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도 시행되어 왔는데, 다로리인은 어떤 방식에서 차별점이 있나요?
= 공간 재생은 마을 안의 빈 공간들을 발굴해서, 그 공간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동시에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이에요. 저희는 이런 재생 사업을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선정된 마을 호텔 조성 사업이에요. 농림부 사업으로 전국에서 3곳을 선정했는데 청도군이 그 중 하나입니다. 저희 법인이 민간기업으로 참여하고 있고 공간이 조성되고 나면 운영을 맡게 됩니다. 현재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10호를 확보하고 있는데요, 8호는 리모델링으로 체류형 마을 호텔로 운영하고, 2호는 주민분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마을 서점, 마을 영화관 같은 공동이용시설로 활용하려는 계획입니다. 서점은 청년의 제안을 반영했고, 영화관은 어르신의 의견을 수용했어요.
마을 호텔 조성 사업은 지역에 새로운 가족 단위의 유입을 유도하고, 장기 체류를 기반으로 마을에 ‘머무는 사람’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거든요. 마을에 아이들 발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겠다는 고민의 연장으로 진행되는 실험이기도 하고요.
- 지역 문제 해결 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 지역 문제 해결 사업은 말 그대로, 마을 단위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발굴하고, 주민과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활동이에요. 돌봄, 공간 재생 사업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청도혁신센터와 ‘일상의 OO발견’이라는 사업을 진행했어요. 청도군 전체 212개 마을 단위 중에서, 20곳을 직접 찾아가 마을회관을 돌며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젝트인데요. 저희는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퍼실리테이터로서 마을 분들께 의견을 묻고 답변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질문은 ‘지금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고, 무엇이 해결되면 더 행복해질까요?’, ‘이 마을만의 자랑거리나 자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수집한 이야기를 정리해 청도군에 제출했고, 군 단위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자료화했어요.
또 관광 분야에서는 DMO(지역관광조직) 사업이나 재단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마을 단위 투어나 관광 자원을 발굴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역 문제 해결 사업을 통해 지역, 특히 마을 단위의 문제를 진단하고, 주민의 목소리를 행정이나 공공 서비스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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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어르신과 대화 나눔 프로젝트, 로컬브랜딩 생활실험 ⓒ청도혁신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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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사람이 있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리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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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셔서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고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다로리인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 고민은 늘, 모든 부분에서 있죠(하하) 돌봄 사업만 해도 아이들이 계속 줄고 있어서 확장에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다음 단계로 단순한 돌봄을 넘어서, 도시와 농촌 간 교육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정비하고 있고요. 또 마을마다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보니까 각 공동체별 특징이나 분위기도 무척 다르고, 그런 배경 속에 저희와 함께 사업을 운영하고 활동을 운영할 수 있는 주민 분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고, 누군가가 계속 해나갈 수 있도록 성장과 지원을 병행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걸 체계화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워요.
운영의 안정성도 늘 고민이죠. 도나 군에 장기적인 계획 수립을 요청해도 정책은 늘 단기 사업 중심이고, 마을 수준에 맞는 속도와 접근이 어렵죠. 공모지원 사업만으로 운영되는 구조는 굉장히 불안정하고, 인건비도 턱없이 부족하죠. 지금 다로리인은 상시 근로자 3명을 둔 법인 사업장이지만, 이들은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기도 해요. 대구나 청도에서 출퇴근하면서, 청도에서의 삶이 가능한지 함께 실험하고 있는 중이죠.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근무 시간도 10시부터 4시까지로 제한적이에요. 이런 환경적 여건을 고려하며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네요.
무엇보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마을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내는 방식이다 보니,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수익이 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을의 일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온전한 업으로 연결되기는 한계가 있죠. 현재는 저 또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구성원 사람으로서,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고, 어르신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미래라 생각하며 수익성 보다는 사회적가치에 우선을 두고 있지만 이런 삶의 그림을 얼마나 오래 그릴 수 있을까는 늘 마음에 남는 질문이기도 해요.
곧 시작될 마을 호텔 운영이 장기 체류 모델로서 수익을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런 기대 속에서도 단순한 수익사업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들이는 마을의 매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목표를 잃지 않으려해요. 결국, 마을에 사람이 있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계속 나게 하는 일이니까요.
-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 마련이 과제이지만, 끝끝내 성과 자체보다 마을에 사람이 모이도록 만드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점이 많은 생각을 들게 하네요. 대표님이 상상하는 농촌 마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 저는 이 마을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고, 나이 들어가고, 평온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삶의 전체 경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도시에서는 잘 상상되지 않는 삶이죠. 저희 마을에서 가장 어린 아이가 제 딸이에요. 지난 12월 돌을 맞이했고, 마을에는 90세 넘은 어르신도 계십니다.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마을에서, 세대마다 필요한 돌봄과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최근엔 생각이 조금 더 확장됐어요. 더 많은 청년들이 다로리마을에 와서, 단순한 체험이나 귀촌이 아니라 ‘여기서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거든요. ‘나도 저렇게 아이 낳고 키우고, 여생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상상이 가능한 마을, ‘내 삶의 전 과정을 기획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드는 그런 곳이 되길 바라요. 지금 청년에 대한 정책은 대부분 창업이나 저출생 중심으로만 설계되어 있는데, 그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삶의 흐름 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거든요.
농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살아보고 싶은 곳. 저는 이 마을이 그런 선택지로 남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글·정리 :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안영삼, 최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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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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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중] 2025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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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프] 소셜디자이너 리포트
희망제작소가 그간 만났던 소셜디자이너 32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살고, 일하고 연결하는 청년들의 지역살이,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살펴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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