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과 농산물 새벽배송으로 연결
왜 새벽배송일까요? 대도시 외에도 이게 가능할까요? “농산물 유통 문제를 건드려보려 했어요.” 한국 농산물 유통 시장은 도매 중심으로 설계됐습니다. 서울 가락시장, 구리 도매시장 등이 수도권을 떠받치는 식량의 전초기지 역할을 합니다. 전국의 농수산물 60%가 도매시장에 모이고 이곳에서 가격표를 받습니다. 홍성 농산물은 서울 가락시장을 거쳐 홍성 주민 식탁에 오르는 셈입니다.
“1980년대부터 똑같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어요. 다른 나라들은 식품 생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거리인 푸드마일리지를 줄여가는데 우리는 계속 늘어나요. 신선한 농작물이 지역에서 나오는데 왜 지역 사람들은 마지막 수요처가 돼야 하나요?”
그는 대도시에서만 벌어지고 있던 ‘핫’한 서비스인 새벽배송으로 홍성의 유기농산물을 홍성 주민과 연결하는 방식을 구상했습니다. 쿠팡, 마켓컬리도 적자 내는데 배송기사도 직접 고용할 수 없고 식품을 보관할 냉동창고도 없는 초록코끼리가 어떻게? 2022년 7월 초록코끼리는 한국 최초 시군단위 새벽배송을 시작합니다. “생각해보니 지역에 이미 새벽배송이 있는 거예요. 우유요. 우유 업체들은 저온창고도 있잖아요. 우유 업체에 제안했더니 반겼어요.”
새벽배송에 알맞은 메뉴를 고민하다 샐러드 구독서비스를 하는 홍성의 청년 사업자와 손잡았습니다. 샐러드는 잘 팔렸습니다. 7월 첫 매출은 1천만 원, 12월엔 4천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이 모델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그는 천안, 세종, 공주까지 확장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초 그는 다시 방향을 틉니다. 새벽배송뿐만 아니라 밀키트 사업에도 일단 정지 버튼을 눌렀습니다.
2022년 어느 새벽, 밀키트 주문이 한꺼번에 600개씩 몰려오던 날, 그는 허허벌판에 만든 제조실에서 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 너무 고독하더라고요. 이러다 내가 홍성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왜 여기 있지? 이걸 하려고 내려왔나?”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금을 받아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도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식품 공장 사장이 되려고 홍성에 왔나?” 그는 자신을 홍성으로 이끈 첫 결심을 꺼내 보고 공장은 접었습니다. 지역에 자기처럼 외로운 청년 창업가들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제가 사기꾼인 줄 알았다더라고요. 이야기하다 보니 다들 저랑 비슷한 거예요. 각자 홀로 모래성을 계속 쌓고 있는 느낌이요. 그래서 우리 이렇게 저렇게 합쳐 일해보자 제안했고, 실제로 시너지를 확인했어요. 샐러드 새벽배송이 그 예죠.”
지난해 초 그는 경기가 나빠져 가공식품 산업에 겨울이 닥칠 거라 판단했습니다.
“농업의 여러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제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요.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밀키트 식품 사업을 불황기에 무조건 끌고 갈 이유가 없었어요. 저는 적어도 제 돈벌이할 기반은 마련했으니 다른 청년들이 농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농촌에는 다양한 시각으로 농업의 부가가치를 띄워줄 사람들이 필요해요. 디자인, 브랜딩, 마케팅.... 농촌의 많은 문제들이 정부 예산 푼다고 풀리지 않아요. 민간에서 청년이 창업으로 해결해볼 만해요.”
그와 홍성의 창업가들 다섯팀이 뭉쳐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으로 행정안전부의 청년만들기 사업에 도전한 까닭입니다. 행안부는 2021년부터 매해 지역에 청년마을 12곳을 뽑아 3년 동안 지원해왔습니다. 지난해엔 161개 팀이 도전했어요. ‘집단지성’은 뽑혔습니다. 예산이 끊기면 청년마을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집단지성’의 제안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달랐습니다. 이들이 내세운 건 지속가능한 ‘로컬 스타트업 빌리지’입니다.
그게 뭐가 새롭냐고요? 제안이야 다 지속가능하다고 하지 않냐고요? ‘집단지성’의 차별점은 직접 지속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가공유통업, 관광, 콘텐츠, 디자인 등 분야별로 지역에서 3~7년 고군분투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습니다. “농촌에 스타트업 콘텐츠가 정말 많은데 사람은 부족해요. 도시보다 경쟁이 덜하죠. 그러니 가능성이 커요. 제대로 된 아이템과 열정만 있으면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